순천 율봉서원,
정극인을 기리는 별량면의 서원
훼철과 복설을 거쳐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원 이야기
순천 별량면 우산리를 지나다 보면 낮은 산을 등지고 조용히 자리한 서원 하나를 만나게 돼요. 바로 율봉서원인데요,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조선 전기의 학자 정극인을 비롯한 영광 정씨 세 분을 모신 곳이더라고요. 순천에는 서원이 여러 곳 남아 있지만, 율봉서원은 배향 인물과 건물 배치가 뚜렷하게 기록돼 있어서 이야기를 따라가기 좋은 곳이에요.
오늘은 이 서원이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하나씩 짚어볼게요.
정극인을 비롯한 영광 정씨 세 분을 모신 곳
율봉서원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정극인(1401~1481)을 중심으로, 정숙, 정승조까지 영광 정씨 세 분을 함께 향사하는 서원이에요. 한 집안에서 세 분을 나란히 모셨다는 점이 인상적인데, 그만큼 이 가문이 지역 유림 사회에서 존경받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후손과 유림들이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니, 세 분의 삶과 학문이 후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온 셈이죠.
서원은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으로,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는 동시에 지역 유생들을 가르치는 역할도 함께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지금으로 치면 지역 인재를 길러내는 사립 학교이자, 동시에 그 지역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한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죠. 율봉서원 역시 그런 이중의 역할을 담당했던 공간이었을 거예요.
1824년 세워져 1868년 훼철, 1948년 다시 일어서다
율봉서원은 1824년(순조 24) 호남 유림이 발의해 창건됐다고 해요. 그런데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는 아픔을 겪었고요. 흥선대원군이 전국적으로 서원을 대거 정리했던 시기라 이때 문을 닫은 서원이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율봉서원도 그 흐름을 피해가지 못했던 거죠.
다행히 1948년 옛터에 다시 복설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창건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헤아려보면 200년이 넘는데, 그 사이 한 번은 완전히 문을 닫았다가 다시 일어선 셈이에요. 훼철과 복설을 겪으며 이 자리를 지켜온 유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 서원을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건물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요.
서향으로 앉은 서원, 삼강문과 경의문
율봉서원은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뒤로는 자그마한 산이 있고 앞으로는 순천시 별량면 우산리 간동마을이 펼쳐져 있어요. 정면에서 바라보면 왼쪽에는 삼강문이, 오른쪽에는 외문인 경의문이 자리하고 있고요. 삼강문을 들어서면 효자, 충절, 열녀를 기리는 두 채의 건물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셋을 한 공간에 모아 기렸다는 점이 다른 서원과 비교했을 때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에요.
경의문을 지나면 '율봉서원'이라는 편액과 '명덕재'라는 편액이 함께 걸린 강당이 나와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라고 하니 서원 강당치고는 넉넉한 크기라고 볼 수 있죠. 이 강당은 유생들이 학문을 강론하던 자리이자, 지금도 유림의 여러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어요.
'삼강'이라는 말은 유교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세 가지 도리, 즉 효(孝)·충(忠)·열(烈)을 가리키는 표현이에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배우자에게 정절을 지키는 것을 기리기 위해 정려문이나 삼강문 같은 건물을 세우는 문화가 조선시대 곳곳에 남아 있는데, 율봉서원의 삼강문도 그런 전통 위에 세워진 공간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강당 너머 내삼문 지나 율봉사로
강당을 마주 보고 왼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내삼문을 지나 율봉사(栗峰祠)라는 사당을 만나게 돼요. 바로 이곳에 정극인을 비롯한 세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서원의 가장 안쪽, 가장 조용한 자리에 사당을 배치하는 건 조선시대 서원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이라고 해요. 강학 공간인 강당에서 제향 공간인 사당까지, 걸음을 옮길수록 점점 더 엄숙해지는 동선을 느껴보실 수 있을 거예요.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것들
율봉서원의 주소는 순천시 별량면 우산리예요. 이용 시간이나 요금, 휴무일 같은 세부 정보는 따로 확인되지 않은 곳이라, 방문 전에 순천시 문화관광 안내나 지도 앱을 통해 최신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조용한 마을 안쪽에 자리한 서원인 만큼, 관리 상황에 따라 개방 여부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하시면 좋겠어요.
간동마을을 함께 둘러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서원 앞으로 펼쳐진 마을 풍경이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고 하니, 서원 답사와 함께 마을 산책까지 곁들이면 하루 일정이 한결 풍성해질 것 같아요.
특히 가을철에는 서원 뒤편 야산과 마을 들녘이 함께 물들어 운치가 더해진다고 하니, 단풍철에 순천을 여행하신다면 율봉서원도 동선에 넣어보시길 추천드려요.
정극인을 비롯한 세 분의 학덕이 깃든 조용한 서원이에요. 간동마을 풍경과 함께 천천히 걸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