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용강서원,
양팽손을 모신 공마당의 서원
두 번 자리를 옮기고도 지켜낸 제주 양씨의 서원
순천 공마당1길을 따라가다 보면 낙안읍성이나 순천만 같은 유명 관광지와는 결이 다른, 조용한 서원 하나를 만나게 돼요. 바로 용강서원인데요,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조선시대 개혁파 학자였던 양팽손을 모신 곳이더라고요. 두 번이나 자리를 옮기고 다시 지어지는 우여곡절을 겪은 이 서원의 이야기를, 오늘 하나씩 짚어볼게요.
1821년 세워져 1970년 지금 자리로
용강서원은 1821년(순조 21) 지금의 순천시 해룡면 중흥리에 처음 창건됐다고 해요. 그런데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는 아픔을 겪었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1970년이 되어서야 순천시 금곡동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지어졌어요. 창건부터 지금 자리에 이르기까지 150년 가까운 시간과 두 번의 큰 변화를 거친 셈이니, 건물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이 결코 가볍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원철폐령은 흥선대원군이 1868년을 전후해 전국의 서원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던 조치로 알려져 있어요. 당시 많은 서원이 이때 문을 닫았는데, 용강서원도 그 흐름 속에서 한동안 사라졌다가 후손들의 노력으로 다시 세워진 거예요. 지금 우리가 보는 용강서원은 원래 자리가 아니라 옮겨 지어진 자리라는 점, 기억해두시면 답사가 더 흥미로워질 것 같아요.
지춘문 지나 강당, 그리고 동재·서재
용강서원은 신실을 비롯해 모두 6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어요. 외삼문에는 '지춘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 문을 들어서면 '용강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린 강당을 만나게 돼요. 강당과 나란히 좌우로는 유생들이 머물던 서재와 동재가 자리하고 있고요.
강학 공간이 가운데 강당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배치는 조선시대 서원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성이라고 해요.
강당 뒤쪽으로는 1.5m 정도 지반 차이를 두고 별도의 담장이 둘러진 제향 공간이 자리하고 있어요. 이 공간으로 들어가려면 내삼문인 '이정문'을 지나야 하는데,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을 이렇게 지반 차와 담장으로 나누어 구분한 건, 학문을 닦는 자리와 조상을 기리는 자리를 엄격히 구분하려 했던 조선시대 서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에요.
서원 건축에서 외삼문과 내삼문은 각각 바깥 경계와 제향 공간의 경계를 표시하는 문으로, 세 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삼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이런 삼문 구조는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을 명확히 나누고, 방문자가 공간의 위계를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설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낙천사에 모신 양팽손과 양신용
제향 공간에 자리한 신실은 앞면 3칸, 옆면 1칸 반 규모로, 앞쪽 툇간을 개방한 맞배지붕 건물이에요. 이 신실의 편액은 '낙천사'인데, 이곳에는 양팽손의 위패가 주벽으로 모셔져 있고, 양신용의 위패도 함께 배향돼 있어요. 두 분을 한 사당에 함께 모셨다는 건, 두 분 사이에 학문적으로든 혈연으로든 깊은 연결고리가 있었다는 뜻으로 짐작해볼 수 있어요.
양팽손(1488~1545)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인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에요. 개혁을 추진하다 사화에 연루돼 화를 입었던 조광조와 가까운 사이였다고 전해지는데, 이런 배경 때문에 양팽손을 기리는 서원이나 사당이 여러 지역에 남아 있다고 해요. 용강서원도 그런 추모의 흐름 속에서 세워진 공간 가운데 하나인 셈이죠.
조광조가 중심이 됐던 개혁 정치는 결국 1519년 기묘사화로 좌절되고 말았는데, 이 사건으로 많은 신진 사림들이 화를 입거나 지방으로 밀려났다고 전해져요. 양팽손 역시 이런 정치적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인물 중 한 명으로, 그의 학덕을 기리는 서원이 순천 땅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뜻깊게 다가와요.
제주 양씨 종중이 지켜온 공간
용강서원은 제주 양씨 종중에서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다고 해요. 국가나 지자체가 아니라 후손들이 직접 서원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인데, 그만큼 이 서원이 집안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깃든 공간이라는 뜻이기도 하겠죠. 이런 점에서 용강서원은 조선시대 순천 지역 사족, 즉 지역 유력 가문들의 활동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문중이나 종중이 직접 관리하는 문화유산은 국가나 지자체가 관리하는 곳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정해진 개방 시간에 맞춰 움직이기보다는, 후손들의 손길이 오랜 세월 그대로 이어져 온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용강서원을 둘러보실 때도 그런 마음으로 천천히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것들
용강서원의 주소는 순천시 공마당1길 64예요. 이용 시간이나 요금, 휴무일 같은 세부 정보는 따로 확인되지 않아서, 방문 전에 순천시 문화관광 안내나 지도 앱으로 최신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해보시길 추천드려요. 종중에서 관리하는 공간인 만큼, 방문 시에는 조용히 예의를 갖춰 둘러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공마당이라는 지명이 붙은 동네다 보니, 주변에 순천 문화의 거리 같은 다른 볼거리도 가까이 있어요. 용강서원 답사 후에 도심 쪽으로 걸음을 옮겨 함께 둘러보시는 동선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아요.
두 번의 시련을 딛고 다시 세워진 서원이에요. 양팽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천천히 걸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