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웹진순천 인사이드 · 2026-09-02 · 읽는 시간 5분

순천왜성,
정유재란 최후의 격전지를 걷다

왜군의 최후 방어기지에서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까지

순천왜성, 정유재란 최후의 격전지를 걷다
순천 현지 사진

순천 앞바다에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곳이 있어요. 바로 해룡면 신성리에 자리한 순천왜성이에요. 이름 그대로 왜군이 쌓은 성인데, 이곳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벌인 격전은 훗날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로까지 이어졌다고 해요.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이 성 하나에 정유재란 후반부의 굵직한 이야기가 거의 다 담겨 있더라고요. 그 흐름을 순서대로 짚어볼게요.

왜군의 전진기지이자 최후 방어기지

순천왜성
순천왜성

왜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이 한반도 남해안 일대에 쌓은 일본식 성곽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흙과 돌을 섞어 쌓아 올리고, 방어와 보급을 함께 고려해 대개 바다와 맞닿은 자리에 세운 게 특징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순천왜성도 이런 왜성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곳 중 하나예요.

순천왜성은 정유재란(1597)이 한창이던 때, 육지 전투에서 패퇴한 왜군 선봉장 우키다 히데이에와 도도 다카토라가 호남을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으려고 쌓은 성이에요.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급하게 쌓아 올린 토석성이라고 하니, 당시 왜군이 얼마나 다급하게 방어선을 마련하려 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이 성에는 왜장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이 이끄는 1만 4천여 명의 왜병이 주둔했고, 이곳을 두고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두 차례에 걸쳐 격전을 벌였다고 해요. 남해안 일대에는 이런 왜성이 26개나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곳은 순천왜성이 유일하다고 전해져요. 그만큼 당시 전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한 유적인 셈이에요.

3개월왜군이 순천왜성을 쌓는 데 걸린 기간

바닷물을 끌어들인 독특한 축성술

순천왜성
순천왜성

성곽 규모도 상당해요. 전체 면적이 약 120,595㎡(36,480평)에 달하고, 외성의 둘레는 2,502m, 내성은 1,342m라고 해요. 외곽을 이루는 토석성이 3개, 본성인 석성이 3첩, 그리고 성문이 12개나 되는 구조로 축조됐다고 하니 규모나 방어 체계 면에서 결코 작은 성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가장 독특한 점은 검단산성 쪽 육지부를 파내 바닷물이 드나들도록 만들어서, 성을 마치 섬처럼 만들고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는 물에 뜨도록 설계했다는 거예요. 이런 구조 때문에 예교 또는 왜교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고, 일본에서는 이곳을 순천성이라 부른다고 해요. 바다를 방어선으로 삼은 왜성의 축성술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히데요시의 전라도 공략과 최후의 격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에서 패퇴한 원인을 전라도 의병과 수군의 용전에서 찾았다고 해요. 그래서 정유재란 때는 전라도를 철저히 공략하기 위해 각지에 진지를 구축하며 공세를 강화했는데, 순천왜성도 그런 배경에서 세워진 거점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무술년인 1598년 8월, 히데요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전세에도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히데요시가 급사한 뒤, 순천왜성에 주둔해 있던 왜군 최정예 부대인 소서행장의 군대와 조·명 수륙연합군 사이에 두 달에 걸친 최후이자 최대 규모의 격전이 펼쳐졌다고 해요. 육군은 유정과 권율이 이끄는 3만 6천 병력, 수군은 진린과 이순신이 이끄는 1만 5천 병력이 순천왜성과 인근 장도 일대를 오가며 왜군을 몰아붙였다고 전해져요.

27일간 이 바다에 머물렀던 이순신은, 전사 하루 전까지도 소서행장을 노량으로 유인할 작전을 짜고 있었어요.

이순신과 노량해전으로 이어진 마지막 전투

이충무공은 이곳에서 27일간 머물렀다고 해요. 그리고 전사하기 하루 전, 순천왜성에 갇혀 있던 소서행장을 노량 앞바다로 유인해 큰 승리를 거두는데, 이 전투가 바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로 알려진 노량해전이에요. 순천왜성에서의 포위전이 노량해전으로 이어졌다는 걸 알고 나면, 이 성터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요.

노량해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틀어 마지막으로 벌어진 해전으로 꼽히는 전투예요. 이 전투를 끝으로 7년에 걸친 전쟁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고 알려져 있으니, 순천왜성에서의 포위전이 곧 전쟁 전체의 마지막 장이었던 셈이죠.

지금 순천왜성으로 가려면 순천 시가지에서 여수 방향으로 6㎞쯤 간 뒤, 왼쪽으로 다시 6㎞를 더 들어가야 해요. 그 길목에는 200여 호가 사는 신성리 마을과 이충무공을 배향한 충무사가 자리하고 있어서, 왜성만 보고 돌아오기보다는 충무사까지 함께 둘러보시는 걸 추천해요.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남은 성터

왜성은 신성리 마을에서 남쪽으로 200m쯤 떨어진 지점, 광양만에 접한 나지막한 송림 안에 자리하고 있어요. 정유재란 최후의 격전이 벌어졌던 이 자리는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를 직접 보여주는 산교육장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해요. 성벽을 따라 걸으며 400여 년 전 이곳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공방전을 떠올려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야외 유적지인 만큼 방문하실 때는 걷기 편한 신발을 챙기시고, 여름철에는 그늘이 많지 않을 수 있으니 물과 모자를 준비하시는 게 좋아요. 광양만을 끼고 있어 바닷바람도 만만치 않은 편이니, 계절에 맞는 겉옷도 챙겨가시길 권해드려요.

도시전설 팁
순천왜성은 이용요금·개방시간·휴관일이 따로 확인되지 않았어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으니, 방문 전 순천시 문화관광 안내로 최신 정보를 확인하고 걷기 편한 신발을 챙겨가시길 권해요.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400여 년 전 이야기가 성벽 사이로 슬며시 들려오는 것 같아요 ⚓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2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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