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교,
다섯 번 자리를 옮긴 배움의 터
옥천의 범람을 피해 다섯 번 자리를 옮긴 교육기관의 자취

순천 시내를 걷다 보면 골목 안쪽에서 오래된 기와지붕을 만날 때가 있어요. 그중 하나가 순천향교예요.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는 전국 곳곳에 남아 있지만, 순천향교는 유독 여러 차례 자리를 옮긴 이력을 갖고 있더라고요.
제가 찾아본 자료를 따라가며, 순천향교가 지금 자리에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정리해봤어요.
향교란 어떤 곳인가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에요. 지금으로 치면 국공립 학교와 사당의 기능을 함께 가진 공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전국의 거의 모든 고을에 향교가 하나씩 있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지역 유생들이 이곳에서 유교 경전을 배우고, 동시에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두 가지 역할을 함께 수행했던 거죠.
서원이 개인이나 문중이 세운 사립 교육기관이었다면, 향교는 나라에서 세운 국립 기관이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예요. 그래서 향교는 대체로 각 고을의 중심부나 관아 인근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순천향교 역시 이런 향교의 전통적인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은 공간이에요.
태종 7년, 처음 세워진 순천향교
순천향교는 태종 7년(1407)에 처음 창건되었다고 해요. 조선이 세워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이미 순천에 향교가 들어섰다는 건, 이 고을이 그만큼 일찍부터 행정·교육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어요.
이후 순천이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1550년에는 순천성 동쪽 3㎞ 지점으로 향교를 옮겼다고 해요. 도호부는 지금의 시(市)에 해당하는 지방 행정 단위로, 순천이 도호부로 승격되었다는 건 그만큼 인구와 경제 규모가 커졌다는 뜻이기도 해요. 향교의 위치를 새롭게 정비한 것도 이런 고을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았을 거예요.
임진왜란의 소실과 거듭된 이전
그런데 임진왜란 때 순천향교는 불에 타 소실되고 말았어요. 이후 광해군 2년(1610)에는 순천성 서쪽 구지 북편으로, 정조 4년(1780)에는 홍내동으로 옮겨 세워졌다고 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순조 1년(1801)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보는 순천향교의 위치가 정해졌어요.
창건 이후 지금 자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자리를 옮긴 셈인데, 그 원인은 옥천의 범람과 산사태로 인한 수해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해요. 요즘이야 강우량도 크게 위협적이지 않고 제방도 잘 정비되어 있지만, 당시 순천은 수해가 심하고 잦았던 고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요.
물길을 피해 다섯 번 자리를 옮긴 배움터 — 그만큼 순천 사람들이 이 공간을 소중히 지켜왔다는 뜻이기도 해요.
전라좌도 최대 규모의 향교로
이런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순천향교는 남원향교와 함께 전라좌도 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향교로 발전했다고 해요. 전통적으로 강한 유림 세력의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는 평가도 함께 전해지는데, 여러 번 이전을 겪으면서도 그 위상을 잃지 않았다는 게 눈에 띄는 대목이에요.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수호실 등이 있다고 해요. 명륜당은 유생들이 강학하던 공간이고, 동재·서재는 유생들이 머물던 기숙 공간,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중심 건물이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풍화루는 향교의 출입문 역할을 하는 누각으로, 이런 누각은 다른 지역 향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라고 해요. 건물 하나하나가 강학과 제향이라는 향교 본연의 기능에 맞춰 배치돼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요.
대성전에 모셔진 위패들
대성전에는 5성, 10철, 송조6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고 해요. 5성은 공자를 비롯한 다섯 성현을, 10철과 송조6현은 그 뒤를 잇는 유학의 주요 학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 있어요.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다고 하니,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학 전통이 한 공간 안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셈이에요.
지금도 매년 정해진 시기에 이곳에서 제향 의례가 이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이번 조사로 확인하지 못했어요. 향교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조선시대 교육 문화를 가늠해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할 만한 곳이에요.
앞서 소개해드린 옥천서원과는 직선거리로 24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해요. 국립 교육기관인 향교와 사립 교육기관인 서원이 이렇게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모습도 흔치 않은 풍경이라, 두 곳을 함께 묶어 걸어보시는 것도 순천 답사의 좋은 코스가 될 것 같아요.
다섯 번이나 자리를 옮기면서도 지켜낸 배움터, 그 발걸음을 따라 걸어보시길 바라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