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어은정,
섬진강에서 낚시하며 견딘 의병의 정자
임진왜란의 장수 양사형이 남긴 누각, 백년마다 중건된 역사

순창의 섬진강자전거길을 따라 가다 보면 어은정을 만나요. 섬진강과 오수천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이 정자의 이름부터가 의미심장합니다. '어은(漁隱)'이란 '섬진강에서 낚시를 하며 유유자적한다'는 뜻이거든요.
하지만 이 정자를 지은 사람의 인생은 결코 한가롭지만은 않았어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 양사형, 그는 이 땅에서 여러 시대를 함께 버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분가의 나이에 정자를 세운 양사형, 그 후 임진왜란
양사형(1547~1599)은 1567년, 명종 22년에 성인이 되어 이곳으로 분가하면서 이 정자를 세웠습니다. 원래 이름은 '영하정'이었다고 해요. 그는 섬진강 언덕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며 지냈을 겁니다.
하지만 21년 후인 1588년, 그는 문과에 급제했어요. 조선의 입신을 택한 것이지요. 그리고 4년이 더 지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그는 의병으로 나서 임진왜란 평정에 공을 세웠습니다.
한 개인의 인생이 이렇게 여러 번 바뀌었어요. 한가로운 낚시꾼에서 급제자로, 다시 나라를 위한 의병으로. 그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그가 앉던 자리인 이 정자는 더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백년마다 중건된 정자, 양사형의 이름으로 불려온 450년
어은정은 양사형이 떠난 후 그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어요. 시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중건되었는데, 현재 모습은 1919년에 중건된 것입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정자의 현판은 양사형의 9세손인 양재절이 썼다고 해요.
그것만 봐도 이 집안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정자를 지켜왔는지 알 수 있지요. 1990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섬진강 언덕에 자리 잡은 어은정 주위에는 백일홍이 수십 그루 심어져 경관을 아름답게 해주고 있어요.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하겠지만, 특히 백일홍이 필 무렵이면 정자의 정취가 한층 더해질 것 같습니다. 주변에는 구송정체육공원과 동계시장도 있어서 함께 둘러볼 수 있어요.
한 정자의 역사를 알고 나면, 그 자리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 된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낚시꾼의 정자 이름으로 불려온 450년, 그 정자에 앉으면 시간이 다르게 흐를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