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웹진거창 인사이드 · 2026-09-10 · 읽는 시간 3분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1920년대 지주가의 부를 드러낸 근대 주택

원학고가라 불리는 이 집, 조선의 격식과 근대의 실용성이 만나는 곳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1920년대 지주가의 부를 드러낸 근대 주택
거창 현지 사진

거창 위천면 황산마을은 조선 시대부터 거창신씨의 씨족마을로 알려져 있어요. 1501년 요수 신권이 이곳에 들어와 터를 잡은 이후, 이 마을은 거창신씨의 집성촌으로 번창해 왔거든요. 현재 이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황산리 신씨고가, 다른 이름으로는 원학고가라고 불리는 이 집은, 1927년 신도성이 건립한 근대기 주택이에요.

당시 이 집의 주인은 큰 지주였다고 하는데, 그 경제력과 권위가 고스란히 건축에 드러나 있답니다.

팔작지붕과 겹집, 부와 권위의 상징

사랑채의 팔작지붕
사랑채의 팔작지붕

이 고가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바로 사랑채와 안채의 구조예요. 경남 지방의 일반적인 주택 양식인 홑집이 아니라, 겹집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있거든요. 이는 당시 집주인의 경제력과 권위를 강력하게 드러내는 건축 선택이었어요.

사랑채는 궁궐이나 절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로 꾸며져 있다고 하니, 얼마나 특별한 집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잘 다듬은 커다란 돌로 쌓은 받침돌과 기둥을 받친 주춧돌 위에 설치한 기둥 자리 같은 것들은 조선 중기 이전에도 벼슬이 높은 양반 집안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어요. 이는 근대기에 지주 계층의 부가 얼마나 경제적 권위를 갖추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어요. 안채와 그 건물을 둘러싼 크고 화려하게 지은 부속건물들도 모두 집주인의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답니다.

전통의 격식에서 벗어난 근대의 실용성

안채와 부속건물
안채와 부속건물

하지만 이 고가는 단순히 권위만 추구한 집이 아니에요. 안채의 늘어난 방 수, 좁아진 대청, 집안에 들어선 화장실 같은 시설들은 전통의 격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20세기 초 실용성을 중시하던 가옥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조선 시대의 엄격한 집 배치 원칙들이 점차 실용적인 필요성에 밀려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이 건축에도 반영되어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1920년대에 지어진 이 가옥은 격식의 해체, 실용성의 증가, 심화된 경제적 계층화 같은 복합적인 사회 현상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어요. 돌 기둥과 궁궐 같은 장식은 여전히 전통적 권위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화장실 같은 현대적 편의는 근대에 접어든 한반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죠. 이런 점에서 황산리 신씨고가는 단순한 주택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도민속자료로 지정된 근대기 자산

현재 이 고가는 시도민속자료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어요. 이는 단순한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 건축사와 사회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에요. 마을 전체가 거창신씨의 역사를 담고 있고, 그 중심에 이 집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의미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방문한다면, 단순히 '오래된 집'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근 500년의 한반도 경제사와 사회 변화를 한 채의 집에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개방 시간·휴무일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방문하실 때는 거창군 문화관광과에 미리 문의하여 관람 가능 여부를 확인하시기를 추천합니다.
전통과 근대가 만난 건축 위에서 한 시대를 읽어보세요. 황산리 신씨고가는 부와 변화의 역사를 말해주는 증인이에요 🏛️
#황산리 신씨고가#거창 문화유산#근대 건축#민속자료#지주 주택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10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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