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향교,
1415년부터 이어온 교육과 신앙의 중심
전란을 겪고도 복원된 조선의 학문 전당

거창군 거창읍 성산길에 자리 잡은 거창향교는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에요. 이것은 조선시대 교육의 중심이자, 지역 문화의 등불이었던 곳이거든요. 1415년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하기 위해, 그리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된 이 향교는, 6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어요.
그 과정에서 전란을 겪고도 복원되어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만 해도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답니다.
임진왜란 속에서도 살아난 건축과 신앙
거창향교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정말 많은 시간의 겹겹이가 보여요. 창건 초기인 1415년 이후, 1572년에 현감 서의가 대성전을 설립했고, 1574년에는 현감 장문한이 명륜당을 건립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건물이 소실되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이 향교를 다시 세워냈어요. 1623년에 대성전을 중건하고, 1714년에는 현감 김시빈이 대성전 앞에 춘풍루를 건립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복원되고 지어진 건물들은 단순히 관리자들의 행정적 결정의 결과가 아니에요. 이는 거창 지역의 사람들이 학문과 신앙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예요. 전란 속에서도 이를 복원해내고자 했던 마음, 그것이 바로 향교가 오래도록 존재해 온 이유라고 할 수 있어요.
위치 이전과 현대의 복원
거창향교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번의 이전을 겪었어요. 1748년에는 도유사 김천분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고, 1809년에는 도유사 이상조가 중건했다고 하네요. 세월이 흐르면서 1840년에는 도유사 이준옥과 재임 변윤석, 어재의 등이 협의하여 동재와 서재를 중수했고, 1799년에는 부사 이성이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중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점차 황폐해져 갔어요. 1948년 군정법령에 의해 향교의 재산이 향교재단으로 귀속되었고, 1950년의 농지개혁법으로 전답이 분배되면서 향교의 경제 기반이 크게 흔들렸거든요. 마침내 1974년 향교직제에 따라 중건 및 보수가 시작되었고, 1976년 전면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는 전통을 잃었던 시대에서도 그것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조선의 교육 철학을 담은 공간
거창향교는 원래 국가에서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치던 곳이었어요. 이곳에서 이루어진 교육은 단순한 학문 전수가 아니라, 조선의 통치 철학과 도덕 교육을 함께 담아내던 중요한 기제였답니다.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고 해요.
이는 조선의 정신이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600년의 학문과 신앙의 역사가 담긴 곳이에요. 거창향교에서 조선의 정신을 만나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