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충절을 끝까지 지킨 원천석 선생의 묘역
조선 태종의 스승이었지만 벼슬을 사양한 선비의 마지막 자리
강원 원주시 행구동, 치악산 자락에 자리한 운곡원천석묘역은 고려 말의 학자 운곡 원천석 선생의 묘가 있는 곳이에요. 선생은 성리학자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고,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격변의 시대를 살며 끝까지 신념을 지킨 인물로 전해져요. 역사 속 한 인물의 선택을 조용히 따라가보고 싶은 분이라면, 치악산 자락까지 걸음을 옮겨볼 만한 곳이에요.
성리학자로 이름을 알린 원천석
원천석 선생은 1330년경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학문에 밝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이에요. 특히 목은 이색 선생 등과 함께 성리학을 널리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하니, 고려 말 지식인 사회에서 꽤 비중 있는 자리에 있었던 학자였던 셈이에요. 목은 이색은 고려 말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로 잘 알려진 인물인데, 이런 인물과 나란히 학문을 나누고 성리학을 함께 퍼뜨렸다는 점에서 원천석 선생이 지녔던 학문적 위상을 짐작해볼 수 있어요.
더 눈길이 가는 대목은 원천석 선생이 다름 아닌 조선 태종의 어릴 적 스승이었다는 점이에요. 훗날 조선을 세우고 이끌게 될 인물을 가르쳤던 선생이, 정작 그 왕조가 들어선 뒤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묘역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왕위에 오른 뒤에도 스승의 마음은 끝까지 다른 쪽을 향해 있었다는 점이,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선생의 호는 '운곡'이었는데, 지금 이 묘역의 이름에도 그 호가 그대로 남아 '운곡원천석묘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요. 묘역 이름만 봐도 선생이 평생 어떤 호를 쓰며 살아갔는지, 그리고 그 이름이 지금까지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셈이에요. 이름 하나에도 한 사람의 생애와 자취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이 묘역을 찾아가는 걸음이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고려 말 혼란 속에서 택한 은둔
고려 말은 정치가 매우 어지러웠던 시기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원천석 선생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개탄하며, 결국 벼슬길을 뒤로하고 치악산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고 전해져요. 학문적으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학자가 스스로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선택은, 그 시대를 바라보던 선생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에요.
치악산은 지금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산세가 깊고 넓은 산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그런 산자락에 자리를 잡고 은둔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당시 선생이 느꼈을 심정이 어땠을지 한 번쯤 떠올려보게 돼요. 지금은 원주를 대표하는 산으로 통하는 치악산이, 한때는 한 선비가 세상과 거리를 두며 머물렀던 공간이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두면 좋을 이야기예요.
산에 몸을 숨긴 뒤에도 선생은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져요. 세상과 거리를 둔 채로도 학문과 기록을 이어갔던 모습은, 고려 말을 살았던 여러 선비들에게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해요. 묘역을 둘러보며 그 시절 선생이 치악산 자락에서 보냈을 시간을 한 번 그려보는 것도, 이 장소를 더 깊이 느껴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조선 건국 후에도 지킨 절의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들어선 뒤, 원천석 선생에게도 새 왕조에서 벼슬이 주어졌다고 해요. 하지만 선생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키며, 끝내 조선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고 전해져요. 새 왕조가 내준 자리를 끝까지 받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선생이 남은 생을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어요.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가 왕이 된 나라에서도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는 점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여러 고려 유신들의 선택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예요.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던 시기에는 새 왕조에 협력하지 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킨 선비들의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전해지고 있어요. 원천석 선생 역시 그런 선택을 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는 셈이에요.
앞서 함께 성리학을 폈던 목은 이색 선생 역시 조선 건국 이후 협력하지 않은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니, 두 사람이 비슷한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어요. 같은 학문을 나눴던 두 사람이 같은 시대의 끝자락에서 비슷한 선택을 내렸다는 점은, 그 시절 지식인들이 지니고 있던 가치관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해요. 원천석 선생의 선택을 이런 시대적 맥락 안에서 들여다보면, 묘역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조금 더 또렷하게 다가올 수 있어요.
신념은 말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내는 태도로 증명되는 법이에요.
행구동 치악산 자락, 소박하게 남은 묘역
운곡원천석묘역은 원주시 행구동, 치악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요. 묘역 안에는 봉분 앞에 묘비와 제사 음식을 올려놓는 상석이 마련되어 있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는 신도비가 따로 세워져 있다고 해요. 화려한 꾸밈 없이 소박한 형태로 남아있는 점이, 이 묘역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행구동은 치악산과 가까운 동네라, 산자락의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위치예요. 원주 시내에서 치악산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길에 자리하고 있으니, 치악산을 찾는 날 함께 들러보기 좋은 곳으로 기억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산 쪽으로 향하는 길인 만큼, 서두르지 않고 가는 길의 분위기까지 천천히 즐기면서 다녀올 만한 곳이에요.
묘역을 둘러볼 때는 봉분과 묘비, 상석을 먼저 살펴보고, 조금 떨어진 신도비까지 함께 챙겨보는 순서로 움직이면 전체 구성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요. 자세한 안내나 최근 모습이 궁금하다면, 방문 전에 한 번 더 확인해보는 쪽을 추천해요. 치악산 자락을 함께 걷는 나들이로 일정을 짜보면, 하루를 더 알차게 채울 수 있을 거예요.
치악산 자락을 걷다가, 한 선비의 마음까지 함께 느껴보는 하루 어떠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