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왕 때 세워져 세 번 이름 바뀐 원주 국형사
보문암에서 국향사, 국형사로 이름이 바뀐 원주 행구동의 오래된 절 이야기

강원 원주시 행구동, 고문골길을 따라 올라가면 국형사라는 절을 만날 수 있어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오래된 절이에요. 처음 지어졌을 때 이름은 보문암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름이 몇 번이나 바뀌어 지금의 국형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해요.
이름이 바뀐 사연들을 하나씩 따라가 보면, 이 절이 그냥 조용히 한 자리를 지킨 게 아니라 원주 지역의 역사와 꽤 깊게 엮여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보문암에서 국형사까지, 이름에 담긴 사연
국형사는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가 창건한 절로 전해지는데, 처음에는 보문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보문암이라는 이름의 발음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결국 고문암(古文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져요.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이름이 전해지다 보면 발음이 조금씩 달라지는 일이 흔한데, 국형사의 이름도 그런 과정을 거친 셈이에요.
지금 쓰이는 고문골길이라는 도로명도 이 고문암이라는 옛 이름과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 뒤로 국형사는 또 한 번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이번에는 나라의 역사와 관련이 있어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동악신을 봉안하고 제단을 쌓았고, 해마다 나라의 평화와 풍요를 기원하며 제향을 올렸다고 해요. 나라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절이라는 뜻에서 국향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라고 전해져요.
조선을 세운 왕이 직접 제단을 쌓고 제향을 올렸다는 사연은, 이 절이 한때 나라 차원에서 꽤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걸 짐작하게 해줘요.
또 다른 이야기로는 조선 정종의 둘째 딸인 희희공주가 병을 앓았는데, 이 절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 병이 완쾌됐다는 일설도 함께 전해져요. 정종이 이를 기뻐하며 도량을 크게 넓히고 절의 이름도 지금의 국형사로 고쳤다고 하니, 하나의 절 이름 안에 왕실과 관련된 사연이 두 가지나 겹쳐 있는 셈이에요. 보문암에서 고문암, 국향사를 거쳐 국형사가 되기까지, 이름 하나하나에 그 시대의 사정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흥미롭게 느껴져요.
절 이름의 변천사를 알고 나서 당우를 둘러보면, 평소보다 한층 더 깊이 있게 국형사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이름이 바뀔 때마다 그 시대의 사정이 함께 새겨진 절
여러 번 사라지고 다시 세워진 절
오랜 역사를 가진 절이라고 해서 한 번도 끊긴 적 없이 지금까지 이어진 건 아니에요. 국형사는 1680년에 한 차례 폐사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시기 전후로 비슷한 사정을 겪은 절들이 전국에 적지 않았어요.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여러 사찰이 재정적인 어려움이나 화재, 전란 등 다양한 이유로 문을 닫는 경우가 있었는데, 국형사의 사정도 그 큰 흐름 안에 있었다고 볼 수 있어요.
한때 나라의 제향을 올리던 절도 시대 상황에 따라 문을 닫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와요.
폐사됐던 국형사는 이후 몇 차례에 걸쳐 다시 세워졌어요. 기록에 남아 있는 중수 시기는 1907년과 1945년, 1974년으로, 근대에 들어선 뒤에도 꾸준히 복구와 정비가 이뤄졌다는 걸 알 수 있어요. 1907년은 대한제국 말기, 1945년은 광복을 맞은 해이기도 해서, 그 시기 전후로 전국의 많은 절들이 비슷하게 재건에 나섰던 흐름과도 맞닿아 있어요.
1974년의 중수까지 더하면, 국형사는 근현대를 거치며 세 번이나 다시 일어선 절인 셈이에요.
이렇게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며 지금의 국형사 모습이 만들어졌어요. 한 번에 완성된 절이 아니라, 폐사와 중수를 거듭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거라 생각하면, 당우 하나하나를 둘러볼 때도 그 안에 쌓인 시간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어요. 특히 오래된 문화재와 근대에 다시 세워진 건물이 한 공간에 함께 있다는 점을 알고 가면, 둘러보는 재미가 한층 더해질 거예요.
방문하실 때 이런 배경을 떠올리면서 당우를 하나씩 살펴보시는 걸 추천해요.
대웅전부터 부도까지, 당우와 문화재 둘러보기
지금 국형사에 남아 있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수광전, 동악단, 범종각, 승당 등이 있어요. 대웅전은 절의 중심이 되는 전각이고, 수광전과 동악단은 각각 다른 성격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데, 특히 동악단은 앞서 이야기한 동악신을 봉안했던 역사와 바로 이어지는 이름이라 눈여겨볼 만해요. 범종각과 승당까지 차례로 둘러보면 절의 전체적인 구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요.
국형사에는 문화재로 남아 있는 부도도 있어요. 1799년에 세워진 진암당 대선사 부도가 그것인데, 부도는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탑을 가리켜요. 조선 후기에 세워진 이 부도는 국형사가 폐사와 중수를 거치는 긴 시간 동안에도 자리를 지켜온 흔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당우들을 둘러보신 뒤에 부도까지 챙겨보시면, 국형사의 오랜 시간을 한 번에 둘러보는 느낌이 들 거예요.
국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예요. 월정사는 오대산에 자리한 큰 절로 잘 알려져 있는데, 국형사가 그 말사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강원도 안에서도 여러 절들이 서로 교구로 이어져 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어요. 당우와 부도를 하나씩 둘러보면서 이런 연결 고리를 떠올려보시는 것도 국형사를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이 될 거예요.
고문골길 따라 행구동 국형사 찾아가기
국형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고문골길 155, 행구동에 자리하고 있어요. 길 이름인 고문골길은 앞서 이야기한 고문암이라는 옛 이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름의 흔적이 지금의 도로명에까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찾아가는 길부터 이야기가 담겨 있는 셈이에요. 주소를 그대로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면 큰 어려움 없이 찾아가실 수 있을 거예요.
행구동은 원주시 안에 자리한 동네로, 원주 시가지에서 산자락 쪽으로 이어지는 지역이에요. 강원 지역의 절들이 대체로 산을 등지고 자리하는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하면, 국형사 역시 비슷한 지형 안에 들어서 있다고 짐작할 수 있어요. 차로 이동하신다면 주차가 가능하니 큰 불편 없이 다녀오실 수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신다면 노선과 배차 시간을 미리 한 번 확인해보고 출발하시는 게 좋아요.
절을 둘러보실 때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수광전과 동악단, 범종각, 승당까지 순서대로 돌아보시고, 진암당 대선사 부도까지 챙겨보시면 국형사의 역사를 한 바퀴 돌아보는 느낌이 들 거예요. 평지보다는 산자락에 가까운 절이 많은 만큼, 편한 신발을 챙기시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행구동 일대를 함께 둘러보실 계획이라면, 국형사를 먼저 들렀다가 주변 동네를 천천히 걸어보는 일정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름도 여러 번 바뀌고, 폐사와 중수도 몇 차례나 겪었지만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형사, 한 번쯤 들러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