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당포성지,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지
임진왜란의 승전지, 최영장군의 유산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 당포성지는 한반도 역사상 중요한 전장의 하나예요. 고려 공민왕 23년, 즉 1374년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아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답니다. 이후 임진왜란 시대에는 또 다른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역사를 함께 살펴보고 싶어요.
최영장군이 쌓은 성, 고려의 저항
당포성지의 역사는 최영 장군과의 만남에서 시작돼요. 고려 말 왜구의 침략이 심해지자, 최영 장군은 이 지역에 성을 쌓고 왜구에 맞서게 된 거죠. 그의 지휘 아래 병사와 주민들이 함께 돌을 쌓으며 만든 이 성은 당시 해안 방어의 최전선이었다고 해요.
최영 장군의 전략적 안목과 리더십이 드러나는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포승첩,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
당포성지가 정말로 유명해진 것은 임진왜란 때예요. 선조 25년, 즉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당포성이 일시 점령당했어요. 하지만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유명한 '당포승첩'이라고 불리는 해전입니다.
이 승리는 임진왜란 초기 해전에서 얻은 중요한 승전으로, 우리 해군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석축진성의 특징과 군사적 가치
당포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이에요. 석축진성이란 국경이나 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을 말한다고 하는데, 당포성도 정확히 이러한 목적으로 건설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남·북쪽으로 정문 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시켰다고 해요.
이는 당시 군사 기술과 전략적 사고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합니다.
남아 있는 유적들과 당포성의 규모
지금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 높이 2. 7m, 폭 4. 5m라고 해요.
동·서·북쪽에는 망을 보기 위해 높은 곳에 지은 망루 터가 남아 있고, 성문 터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밖으로 쌓은 작은 옹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적들을 보면 당시 얼마나 정교한 방어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어요.
역사의 소리가 들리는 현장
당포성지에 방문하면, 옛날 최영 장군과 이순신 장군이 펼쳤던 전쟁의 흔적들을 상상해볼 수 있어요. 높은 성벽에서 바라본 한려수도의 풍경, 망루에서 보았을 먼 바다, 그리고 당시 군인들이 걸었던 성벽 위의 길들. 모든 것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영과 이순신, 두 장군의 승전지. 당포성지에 서면 그들의 용맹함과 지략이 살아나는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