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자리를 옮긴 문,
경희궁 흥화문
정문에서 사찰 정문으로, 다시 경희궁으로 돌아오기까지
종로구 신문로에 자리한 경희궁 흥화문은 이름 그대로 경희궁의 정문이에요. 그런데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이 문은 지금 자리에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다시 돌아온 문이라고 해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살펴볼게요.
경희궁의 다섯 개 문 중 정문
원래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모두 5개였다고 해요. 정문인 흥화문 외에도 동쪽에 흥원문, 서쪽에 숭의문, 남쪽에 개양문, 북쪽에 무덕문이 있었다고 전해져요. 창건 당시 경희궁은 창경궁의 제도를 따라서 규모를 작게 하고, 정문인 흥화문도 단층으로 세웠다고 해요.
다섯 개의 문이 각각 동서남북과 정문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당시 경희궁의 전체적인 구조가 꽤 짜임새 있게 계획됐다는 걸 짐작해볼 수 있어요. 정문이 단층으로 세워졌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이 역시 창경궁 제도를 따라 규모를 작게 잡은 결과라고 해요.
야주개, 밤에도 빛났다는 현판
경희궁 근처의 얕은 고개는 야주개라고 불렸다고 해요. 흥화문의 현판 글씨가 명필이라 밤에도 빛이 나서, 그 광채가 고개까지 훤하게 비추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져요. 문 하나의 현판 글씨 때문에 동네 고개 이름까지 지어졌다는 게, 당시 사람들에게 이 문이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지금은 야주개라는 지명을 일상에서 쓰는 경우가 드물지만, 이런 이름 하나에도 흥화문을 둘러싼 옛사람들의 감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게 흥미로워요. 이름의 유래를 알고 나면 흥화문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질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 문이 겪은 수난
흥화문은 원래 금천교 동쪽, 지금의 구세군회관 빌딩 자리에서 동쪽인 종로를 향하게 지어졌다고 해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15년, 도로가 확장되면서 흥화문은 원래 위치에서 약간 뒤로 옮겨졌고, 문의 방향도 도로와 나란하게 남향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져요. 도로 하나가 확장되면서 수백 년 된 궁궐 정문의 방향까지 바뀌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와요.
더 안타까운 일은 그다음이었어요. 1932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찰인 박문사를 건립하면서, 그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흥화문을 아예 떼어갔다고 해요. 경희궁의 정문이 다른 곳의 정문으로 쓰이게 됐다는 건, 궁궐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꽤 뼈아픈 대목이에요.
광복 이후 박문사는 폐지됐고, 그 자리에는 영빈관과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흥화문은 한동안 그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해요. 원래 있던 자리를 떠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정문 역할을 계속했다는 점이 이 문이 겪어온 시간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1988년, 마침내 경희궁으로 돌아오다
흥화문이 다시 경희궁으로 돌아온 건 1988년의 일이에요.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흥화문을 경희궁터로 옮겨왔는데, 옛 개양문이 있던 현재의 위치에 이전해 복원하면서 궁궐 정문으로서의 역사성을 되살리고자 했다고 전해져요. 원래 자리는 아니지만, 경희궁 안으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어요.
금천교 동쪽에서 시작해 박문사, 신라호텔을 거쳐 다시 경희궁으로 돌아오기까지, 흥화문은 서울의 근현대사를 그대로 몸에 새기고 있는 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흥화문 앞에 서면 그 긴 여정이 잘 떠오르지 않을 만큼 차분한 모습이지만, 알고 보면 이렇게 굴곡진 사연을 품고 있는 거죠.
경희궁, 조선의 다섯 궁궐 중 하나
경희궁은 조선시대 다섯 개 궁궐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에요. 인왕산 자락에 자리해 있으며, 한때는 다른 궁궐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지금은 옛 모습의 일부만 남아 있지만, 흥화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궁궐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요.
지금의 경희궁 권역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서, 흥화문을 지나 궁궐터를 둘러본 뒤 박물관까지 이어서 관람하는 코스로 다녀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궁궐과 박물관을 함께 둘러보면 서울의 역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아요.
흥화문 앞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흥화문을 마주할 때는 문 자체의 단정한 규모와 더불어, 이 문이 겪어온 이전과 복원의 역사를 함께 떠올려보시는 걸 추천해요. 화려하지 않지만 단층으로 세워진 소박한 모습 안에, 앞서 살펴본 만큼의 굴곡진 시간이 담겨 있으니까요.
종로구 신문로 일대는 정동과도 가까운 편이라, 근대 건축물이 모여 있는 정동길과 묶어 도보 여행 코스로 계획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궁궐 정문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서울의 근현대사를 압축해서 만나는 경험이 될 수 있어요.
여러 자리를 거쳐 돌아온 문 앞에 서면, 그 오랜 여정이 새삼 궁금해져요. 신문로를 지나신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춰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