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대신 이곳으로,
당고개순교성지
설 대목장 때문에 옮겨진 형장, 열 명의 순교자를 기리는 자리

용산전자상가에서 걸어서 5분이면 닿는 작은 언덕에 당고개순교성지가 있어요. 전자상가의 분주한 풍경과는 사뭇 다른, 조용하고 숙연한 공간인데요.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은 9분의 성인과 1분의 복자를 배출한 뜻깊은 성지라고 해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살펴볼게요.
설 대목장 때문에 옮겨진 형장
당고개순교성지는 기해박해가 끝날 무렵인 1839년, 열 명의 남녀 교우들이 장렬히 순교한 곳이에요. 원래 이들은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처형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서소문 밖 상인들이 설 대목장을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형장을 다른 곳으로 옮겨줄 것을 요청했고, 그렇게 형장이 이곳 당고개로 옮겨지면서 순교자들을 모시게 됐다고 전해져요.
장사와 명절 대목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형장이 옮겨졌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게 다가와요. 그 결정 하나로 열 명의 마지막 순간이 서소문이 아닌 당고개에서 이루어졌고, 그 자리가 지금까지 이어져 성지가 됐으니까요.
당고개라는 이름에 담긴 뜻
당고개라는 이름은 이 일대의 지형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알려져 있어요. 나지막한 고개 위에 자리한 형장이었다는 지리적 특징이 그대로 이름에 남아, 지금까지 이 성지를 부르는 말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에요.
지명 하나에 아픈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데요, 평범해 보이는 동네 이름 속에도 이렇게 깊은 사연이 숨어 있는 경우가 서울 곳곳에 적지 않다고 해요. 당고개도 그런 이름 중 하나인 셈이에요.
찔레꽃 아픔, 매화꽃 향기
당고개순교성지는 찔레꽃 아픔 매화꽃 향기라는 주제로 조성됐다고 해요. 박해의 고통을 찔레꽃 가시로, 하느님의 은총을 매화꽃 향기로 표현했다고 하니, 성지 곳곳의 조형물이나 조경을 살펴보실 때 이 두 가지 이미지를 함께 떠올려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시로 고통을, 향기로 은총을 표현했다는 대비가 인상 깊은데요. 아픔과 위로가 함께 담긴 공간이라는 걸 이름에서부터 느낄 수 있게 설계한 것 같아요.
옮겨진 형장 위에서, 아픔은 향기가 되어 남았어요.
이성례 마리아를 따라가는 열네 걸음
성지 안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조성돼 있는데, 복자 이성례 마리아가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요. 순례객들은 이 열네 걸음을 따라가며 고난의 길과 순교의 영광을 함께 느낄 수 있다고 전해져요. 한 걸음씩 옮기며 그 마음을 함께 헤아려보는 것도 이곳을 둘러보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아요.
순교한 애절한 사연과 함께,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때문에 당고개순교성지는 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해요. 아픈 역사를 품은 자리이지만, 그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묘한 위로를 건네주는 것 같아요.
기해박해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당고개순교성지의 사연이 시작된 기해박해는 1839년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 사건이에요. 조선 후기에는 여러 차례 큰 규모의 천주교 박해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때마다 수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져요. 당고개순교성지처럼 서울 곳곳에 남아 있는 순교 성지들은 이런 아픈 역사의 흔적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는 셈이에요.
이렇게 형성된 순교 성지들은 지금도 천주교 신자들에게 중요한 순례지로 여겨진다고 해요. 신앙의 자유가 없던 시절, 목숨을 걸고 신념을 지킨 이들의 자리를 찾아가 그 뜻을 기리는 순례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고 전해져요.
언덕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당고개순교성지가 자리한 언덕은 지금은 아파트와 상가가 빼곡히 들어선 용산 한복판에 있어요. 도심 한가운데 이런 조용한 성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지는데, 오히려 그 대비 때문에 이곳에 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성지를 둘러보실 때는 차분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으시는 걸 추천해요. 종교와 상관없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여운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남터, 용산가족공원과 이어지는 순례길
당고개순교성지는 다른 순교 성지인 새남터 성당과 용산가족공원 등이 인접해 있다고 해요. 한 곳만 둘러보기보다는 근처 성지들을 함께 묶어 순례 코스로 다녀오시는 것도 의미 있는 하루가 될 수 있어요.
가는 길은 수도권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 5번 출구에서 도보 15분 거리라고 해요.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는 거리이니,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날 걸음을 옮겨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설 대목장 때문에 옮겨진 자리가, 지금은 많은 이들의 순례지가 됐어요. 조용히 걸으며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날 들러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