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웹진사천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2분

450년을 버틴 돌과 흙의 기록,
사천읍성

조선시대 안보 시스템이 남긴 성곽과 그 안의 역사

450년을 버틴 돌과 흙의 기록, 사천읍성
사천 현지 사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사천읍성은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입니다. 약 1. 5㎞의 둘레를 자랑했던 이 성의 역사는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요.

세종 24년인 1442년,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에 의해 돌로 성을 쌓기 시작했고, 3년 후인 1445년에 완성됩니다. 처음부터 완벽했던 건 아니에요. 후대에 증축이 이루어지면서 성의 규모가 늘어났고, 이는 그 시대의 방어 필요성이 그만큼 높았다는 뜻입니다.

백성을 지키고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워지다

조선시대 축성의 기법이 보이는 성벽
조선시대 축성의 기법이 보이는 성벽

사천읍성이 왜 지어졌는지 알려주는 기록이 있어요.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조선 초기에는 남해안이 왜구의 침입으로 늘 위협받고 있었거든요.

처음의 기록에는 성 둘레 3,105척, 성벽의 높이 10. 5∼11. 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후의 기록에는 성둘레 5,015척, 성벽의 높이 15척으로 증축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의 진정한 시련은 임진왜란이었어요. 세종 때 완성된 성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많은 수모를 겪게 되는데, 특히 선조 32년인 1598년은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였거든요.

결국 조명연합군이 왜적을 몰아내면서 사천읍성은 지켜졌습니다.

현재는 시민의 휴식처이자 역사의 현장

산성공원으로 조성된 읍성 내부
산성공원으로 조성된 읍성 내부

현재 남아있는 사천읍성의 성곽은 3개 부근 약 300m 정도예요. 원래 1. 5㎞에 비하면 작은 부분이지만, 이것이 450년을 버텨낸 흔적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현재 성 안에는 충혼탑, 수양루, 활을 쏘는 관덕정이 있는 산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요. 이곳은 단순한 역사 유적지가 아니라,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어 있습니다. 사천을 방문한다면, 조선시대 방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도시전설 팁
사천읍성의 정확한 개방 시간과 산성공원 방문 정보는 사천시 관광 안내를 통해 미리 확인하는 걸 권장합니다. 역사 설명이 필요하다면 사천시 문화 해설사 프로그램 이용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돌과 흙으로 쌓은 성, 450년을 견디고 지금도 그 자리에서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천 여행, 계속할게요!
#사천읍성#조선시대성곽#역사유산#임진왜란#산성공원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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