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웹진전주 인사이드 · 2026-09-02 · 읽는 시간 3분

장현식고택,
독립운동가의 삶이 남은 만석꾼 집

완산구 교동, 나그네를 품었던 고택에 새겨진 이야기

장현식고택, 독립운동가의 삶이 남은 만석꾼 집
전주 현지 사진

전주 향교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장현식고택은, 이름 하나에 독립운동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에요.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건축물 자체의 가치도 예사롭지 않아 함께 정리해봤어요.

만석꾼의 아들, 독립운동가가 되다

장현식고택
장현식고택

장현식 선생은 전북 김제에서 만석군의 아들로 태어나 항일 독립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독립운동가라고 해요. 넉넉한 집안 배경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흘려보냈다는 점에서, 그의 삶이 어떤 방향을 향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고 해요.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했던 학자들이 대거 검거된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장현식 선생 역시 이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은 셈이에요.

해방 이후에는 제2대 전북도지사(1949년 8월 17일~12월 14일)를 지내기도 했다고 하니, 독립운동가에서 행정가로 이어진 삶의 궤적도 눈에 띄어요. 재산가로 태어나 독립운동가로, 다시 지방행정의 책임자로 살아간 한 인물의 생애가 이 고택 곳곳에 배어 있는 셈이에요.

여관 없던 시절, 나그네를 품은 집

장현식고택
장현식고택

장현식 고택은 일찍이 여관과 호텔이 없었던 조선시대에, 남원 호음실의 박씨 집과 함께 여행객들이 부담 없이 여장을 풀고 쉬어 가던 만석꾼 부잣집으로 알려져 있어요. 사흘마다 소 한 마리를 잡아 과객을 접대하는 데 힘썼다고 하니, 그 씀씀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요.

그 정성이 어찌나 유명했던지 '노자돈 떨어지면 서도 장씨 집에 간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해요. 노잣돈이 다 떨어진 나그네가 마지막으로 찾아갈 수 있는 집으로 소문이 났다는 뜻이니, 당시 이 집이 지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노자돈 떨어지면 서도 장씨 집에 간다 — 나그네들 사이에 전해지던 말이에요.

안채와 사랑채, 근대 한옥의 변화를 담다

장현식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등 4동을 전통방식으로 지었는데, 근대 한옥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건축물로 평가받는다고 해요. 목재 가공의 수준이 아주 정교해 전통한옥으로서 건축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설명도 함께 붙어 있어요.

안채와 사랑채가 따로 나뉘어 있는 구조는 조선시대 반가(班家)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 구성으로, 남녀의 생활 공간을 구분하던 당시의 생활 방식을 짐작하게 해줘요. 4동이나 되는 건물이 온전히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고택이 지역에서 꾸준히 관리되고 보존돼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만석꾼의 살림집이었던 만큼 규모나 목재 가공의 정교함도 남달랐을 텐데, 그 흔적이 지금까지 이어져 근대 한옥 연구에서도 의미 있는 자료로 다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건축물 하나가 한 시대의 생활상과 신분, 재력까지 함께 보여주는 셈이에요.

방문 전 확인할 점

장현식 고택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19-6(교동)에 자리하고 있어요. 이용요금이나 운영시간, 휴무일 같은 세부 정보는 따로 확인되지 않아서, 방문 전에 지도 앱이나 현지 안내판으로 최신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해보시는 게 좋아요.

향교길이라는 지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인근에 전주향교를 비롯한 교동 일대의 한옥 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만큼, 근처 명소와 함께 묶어 둘러보는 코스로 계획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도시전설 팁
이용시간·요금 정보가 따로 공개돼 있지 않은 곳이라, 방문 전 지도 앱이나 현지 안내판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하고 가시는 걸 추천해요.
나그네를 품었던 넉넉한 집이 지금은 그 뜻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교동 골목을 걷다 잠시 들러보세요 🏠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2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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