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자산성지,
신유박해 순교자 일곱 분이 잠든 자리
승암산이 치명자산으로 불리게 된 사연을 제가 자료로 찾아 정리해봤어요

전주 한옥마을 인근 승암산에는 치명자산성지라는 천주교 순례지가 자리하고 있어요. 원래는 승암산 혹은 중바위산이라 불리던 이 산이 어떻게 치명자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는지, 그 사연을 제가 자료를 찾아 정리해봤어요.
승암산에서 치명자산으로
이곳은 예부터 승암산, 또는 중바위산이라 불려온 곳이라고 해요. 산정에 천주교 순교자들이 묻힌 이후로는 치명자산 혹은 루갈다산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고 하는데, '치명'이라는 말은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바쳤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이름이 바뀔 만큼 이 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데, 바로 신유박해 때 처형된 순교자 일곱 분이 이 산정에 함께 모셔져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하나의 산이 특정 사건을 계기로 이름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이곳이 품고 있는 역사의 무게를 짐작해볼 수 있어요.
하나의 유택에 모셔진 일곱 분
치명자산에는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다가 처형된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부인 신희, 큰아들 유중철(요한)과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둘째 아들 유문석(요한),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마태오), 이렇게 일곱 분이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다고 해요.
이분들은 1801년, 순조 1년에 있었던 신유박해 때 9월부터 4개월여에 걸쳐 전주 남문 밖(지금의 전동성당 자리)과 전주옥, 숲정이에서 처형되어 멸족되었다고 전해져요. 한 집안이 사실상 대를 이어 신앙을 지키다 함께 목숨을 잃은 셈이라, 그 사연이 더욱 무겁게 다가와요.
가매장에서 이장까지, 100여 년의 시간
처형 이후 살아남은 노복과 친지들이 은밀하게 시신을 거두었지만, 고향인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땅에는 묻히지 못하고 들 건너 재남리 바위백이라는 곳에 가매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신앙을 이유로 처형된 이들이었기에, 장례조차 마음대로 치르기 어려웠던 시대적 상황을 짐작하게 해요.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인 1914년 4월 19일, 전동성당의 보두네 신부와 신도들이 이분들을 지금의 산정으로 옮겨 모셨다고 해요. 처형된 지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온전히 모셔질 수 있었던 셈이라, 그 세월의 무게가 함께 느껴지는 대목이에요.
신유박해라는 시대적 배경
신유박해는 1801년, 조선 순조 1년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당시 조정이 천주교를 사교로 규정하고 신자들을 대대적으로 처벌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고 알려져 있어요. 치명자산에 모셔진 일곱 분도 이 신유박해 당시 목숨을 잃은 분들이에요.
호남 지역에 처음 복음을 전한 인물로 알려진 유항검을 비롯해 한 집안 여러 세대가 함께 처형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한 가문에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어요. 지금도 이분들의 신앙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많은 순례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해요.
치명자산이라는 이름 안에는,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바친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지금의 치명자산성지 둘러보기
치명자산성지는 전주시 완산구 바람쐬는길 87에 자리하고 있어요. 현재 이곳에는 순례 안내소, 순례자 성당, 산상 기념성당, 옹기가마 경당, 성직자 묘지, 전망대, 예수 마리아 바위 등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요.
이용시간이나 입장료 같은 세부 정보는 따로 확인되지 않아서, 방문 전 지도 앱이나 관할 성당 안내를 통해 최신 정보를 확인해보시는 게 좋아요. 순교자들이 잠든 자리인 만큼, 방문하실 때는 조용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둘러보시길 권해드려요.
산 하나에 새겨진 이름조차 무거운 사연을 품고 있어요. 조용히 걸으며 그 시간을 떠올려보시면 좋겠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