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웹진경주 인사이드 · 2026-09-02 · 읽는 시간 6분

경주 능지탑지,
문무왕의 이야기가 남은 탑터

능시탑에서 연화탑까지, 여러 이름에 담긴 사연을 따라가봤어요

경주 능지탑지, 문무왕의 이야기가 남은 탑터
경주 현지 사진

경주를 다니다 보면 이름부터 궁금해지는 유적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능지탑지도 그런 곳 중 하나예요. 탑이라고 부르는데 왕릉 같은 분위기도 느껴지고, 이름도 능시탑·연화탑 등으로 여러 가지로 불려왔다고 해서 제가 자료를 찾아보며 하나씩 정리해봤어요. 무너진 채 오래 방치돼 있던 탑이 다시 세워지기까지의 사연과, 그 안에 얽힌 신라 왕의 이야기까지 함께 따라가보려고 해요.

능시탑에서 연화탑으로, 이름부터 남다른 탑

경주 능지탑지
경주 능지탑지

능지탑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자리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능시탑 또는 연화탑이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불려왔다고 해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탑은 원래부터 온전한 모습이었던 게 아니라, 오랫동안 무너진 채 방치돼 있던 것을 다시 세운 결과라고 하니 그 사연부터 예사롭지 않아요. 이름이 두 개나 붙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탑을 둘러싸고 여러 이야기와 추정이 오갔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신라삼산조사단이 1969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무너진 탑터를 조사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1979년에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으로 정비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1969년부터 1979년까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조사와 정비를 거듭했다는 것만 봐도, 이 탑이 학술적으로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졌는지 짐작할 수 있죠. 무너진 돌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원래 모습을 되짚어가는 작업이었을 테니, 지금 서 있는 탑의 형태 하나하나에도 그런 조사의 흔적이 배어 있는 셈이에요.

본래는 5층탑, 불상을 모셨던 흔적도 발견

경주 능지탑지
경주 능지탑지

능지탑은 원래 기단의 네 면에 십이지신상을 세우고, 연꽃무늬를 새긴 돌을 쌓아 탑신을 만든 5층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십이지신상은 쥐·소·호랑이 같은 열두 띠 동물의 모습을 한 수호신 조각을 가리키는 말로, 신라 시대 무덤이나 탑 둘레에 즐겨 새겨졌다고 해요. 지금 남아있는 모습보다 훨씬 높고 화려한 탑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거죠.

발굴 과정에서는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불상의 파편과 함께 많은 양의 기와 조각이 함께 출토됐다고 해요. 이 흔적을 근거로 탑의 네 면에 감실, 그러니까 불상이나 위패 같은 것을 모시기 위해 마련한 작은 공간을 만들어뒀던 것으로 보고 있고요. 단순히 돌을 쌓아 올린 탑이 아니라, 불상을 모신 예배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예요.

기와 조각이 함께 나왔다는 건 감실 위쪽에 작은 지붕 같은 구조가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해요.

5층본래 추정되는 능지탑의 원형 규모

기단부에 남은 정교한 흔적들

기단부는 돌을 다듬어 쌓아 올리고, 윗면에는 흙을 덮어 잔디를 심은 형태로 돼 있어요. 기단부 둘레에는 십이지신상 가운데 9구가 방위에 맞춰 마치 안기둥처럼 세워져 있는데, 이 가운데 8구는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게 아니라 낭산 동쪽 황복사 터 앞에 있던 미완성 왕릉 터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해요. 다른 곳에 있던 조각을 가져와 다시 세웠다는 건, 당시에도 이미 만들어져 있던 석조물을 소중히 여겨 다시 활용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어요.

9구 가운데 나머지 1구가 어디서 왔는지는 따로 알려진 바가 없어서, 이 부분도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아 있어요.

탑신부와 정상부에 남은 마감

탑신부는 기단부와 비슷한 방식으로 돌을 다듬어 쌓았지만, 위쪽에 굄돌을 한 단 더 올렸다는 점에서 기단부와는 차이를 보인다고 해요. 탑의 꼭대기는 사모지붕 모양으로 흙을 쌓아 마감했고요. 사모지붕은 지붕의 네 면이 하나의 꼭짓점으로 모이는 뾰족한 형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흙으로 이런 모양을 냈다는 건 그만큼 정성 들여 마감했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런 세부 구조 하나하나가 당시 석탑 건축 기술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인 셈이에요.

지금도 탑 주변에는 정비 과정에서 사용하고 남은 연꽃무늬 돌 36개가 쌓여 있다고 해요. 36개나 남았다는 건, 애초에 이 탑에 그보다 훨씬 많은 연꽃무늬 돌이 쓰였을 거란 뜻이기도 해서, 처음 세워졌을 때의 화려함을 짐작하게 해줘요. 그 옆에는 아직 정확한 성격이 밝혀지지 않은 토단의 흔적도 남아 있고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다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유적이라 더 흥미롭게 느껴져요.

여러 이름, 여러 사연을 품은 탑 - 능지탑지는 아직도 다 풀리지 않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요.

문무왕의 마지막 순간과 닿아 있는 이야기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은 자신이 죽으면 10일 안에 왕궁 바깥뜰에서 검소하게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해요. 삼국통일을 이끈 왕의 유언치고는 무척 소박해서, 그 뒷모습이 더 인상 깊게 다가와요. 화려한 왕릉 대신 검소한 화장을 택했다는 점에서, 문무왕이 남긴 마지막 뜻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돼요.

그런데 능지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천왕사지에서 문무왕릉비의 조각이 발견되면서, 바로 이곳 능지탑지에서 문무왕을 화장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고 해요. 이런 사연 때문에 능지탑이 한때 '능시탑'으로 불렸을 것으로 보고 있고요. '능'이라는 글자가 본래 왕의 무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니, 실제 왕릉은 아니어도 왕이 마지막을 맞은 자리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어요.

탑 하나에 신라의 장례 문화와 왕의 유언, 그리고 후대의 추정까지 함께 얽혀 있는 셈이에요.

능지탑지를 둘러볼 때 참고할 점

능지탑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621-1에 자리하고 있어요. 정확한 관람 시간이나 입장료, 휴무일 같은 세부 정보는 따로 확인되지 않아서, 방문 전에 지도 앱이나 현지 안내판으로 최신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해보시는 게 좋아요.

배반동 일대는 낭산과도 가까운 편이라, 능지탑지 하나만 따로 들르기보다는 주변 유적과 함께 묶어서 동선을 짜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신라 왕경의 흔적을 천천히 따라가보는 코스로 삼아보시면 이야기가 더 풍성하게 다가올 거예요.

탑 앞에 서면 화려한 장식보다는 차분하고 단정한 인상이 먼저 느껴진다고 해요.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진 탑,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왕의 마지막 이야기까지 함께 떠올리며 천천히 둘러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도시전설 팁
이용시간·요금 같은 세부 정보가 따로 공개돼 있지 않은 곳이라, 방문 전 경주시 문화관광 안내나 지도 앱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하고 가시는 걸 추천해요.
이름도 사연도 여러 겹인 탑이에요. 배반동을 지나신다면 잠시 들러 그 이야기를 떠올려보세요 🧭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2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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