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김유신묘,
왕릉급 예우로 조성된 장군의 무덤
삼국통일을 이끈 장군에게 신라가 갖춘 최고의 예우를 따라가봤어요

경주에는 신라 왕릉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장군의 무덤이 하나 있어요. 바로 김유신묘인데, 규모나 형식을 보면 왕릉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라 제가 자료를 찾아보며 어떤 예우를 받은 무덤인지 정리해봤어요. 신하의 무덤인데도 왕릉과 견줘도 손색없는 격식을 갖췄다는 점에서, 신라가 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신뢰를 보냈는지 엿볼 수 있었어요.
삼국통일의 주역, 최고의 예우로 치러진 장례
김유신묘는 경주시 충효동 옥녀봉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데, 674년(문무왕 14년)에 조성됐다고 해요. 김유신은 신라의 장군이자 재상으로 삼국을 통일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로 꼽히죠. 재상은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던 최고 벼슬을 가리키는 말이니, 전쟁터의 장수이면서 동시에 나라 살림까지 이끌었던 인물이라는 뜻이에요.
그 공로를 기려 문무왕은 비단 1,000필과 벼 2,000석을 내리고, 군악을 연주하는 인원 100명을 보내 장사를 지내게 했다고 해요. 군악을 연주하는 이 악대는 본래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는 음악을 맡았다고 하는데, 그런 악대를 100명이나 보내 장례를 치렀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예우였다는 걸 짐작하게 해요. 비석을 세워 공적을 새겨두고, 무덤을 지키는 백성까지 따로 배정해줬다고 하니 신하로서는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를 받은 셈이에요.
이후 흥덕왕 때는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봉했다고 해요. 신하였던 인물이 왕으로 추존된 사례라는 점에서, 신라가 그를 얼마나 각별하게 대우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살아서는 장군이자 재상으로, 죽어서는 왕의 칭호까지 받은 셈이니, 신라 역사를 통틀어도 이런 예우를 받은 인물은 흔치 않았을 것 같아요.
왕릉과 다름없는 봉분의 규모
봉분은 지름 30m에 달하는 큰 원형분으로, 둘레에는 24장의 호석과 돌난간을 둘렀다고 해요. 호석은 봉분이 무너지지 않도록 둘레를 감싸듯 세운 돌을 가리키는 말인데, 24장이나 되는 호석을 촘촘히 둘렀다는 것만 봐도 봉분의 규모가 상당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호석과 돌난간 사이 바닥에는 돌을 깔아 마감했고요.
이런 무덤 양식과 규모는 왕릉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면적은 1만 4,143㎡에 이르고, 지금은 경주시에서 관리하고 있어요. 축구장 면적을 대략 7,000㎡ 안팎으로 잡아보면, 축구장 두 개를 합친 크기에 맞먹는 넓이라고 볼 수 있어요. 1963년 1월 21일에는 사적으로 지정됐다고 하니, 오래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게 관리해온 유적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사적은 국가가 법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문화유산을 가리키는 말이니, 이 무덤이 그만큼 학술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이에요.
우리말에서 '능'은 왕이나 왕비의 무덤을 가리키고, '묘'는 그 밖의 무덤을 가리키는 말로 구분해서 써요. 김유신묘라는 이름에도 '묘' 자가 붙어 있어 공식적으로는 왕릉이 아니라는 뜻이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규모나 격식은 왕릉에 결코 뒤지지 않아요. 이름과 실제 모습 사이의 이 간극이야말로, 김유신이라는 인물이 신라에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무기를 든 온화한 표정의 십이지신상
십이지신상은 무덤의 둘레를 열두 방위에 맞춰 지키도록 배치한 조각으로, 나쁜 기운이나 도굴을 막아준다고 여겨졌던 신라 무덤의 독특한 장식이에요. 왕릉뿐 아니라 김유신묘처럼 격이 높은 무덤에도 이런 수호 조각이 새겨졌다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이 이 무덤을 얼마나 각별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호석에는 이런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 부분이 특히 눈여겨볼 만해요. 보통 왕릉을 지키는 수호신 조각은 갑옷을 입은 무장 모습으로 새겨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김유신묘의 십이지신상은 특이하게도 평복을 입고 무기만 든 모습이라고 해요. 갑옷 대신 평상복을 입혔다는 건, 무덤을 지키는 위엄보다는 다른 인상을 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은 대목이에요.
몸은 정면을 향해 서 있지만 고개는 오른쪽으로 돌려 주시하는 모습이 이색적이라고 하고요. 무장을 하지 않아서인지 표정이나 분위기가 매우 온화해 보인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혀요. 경주의 여러 왕릉 중에도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조각의 우수함이나 상의 크기로는 김유신묘를 따라올 곳이 없다고 전해져요.
왕릉도 아닌 무덤에 이 정도로 정교한 조각을 새겼다는 것 자체가, 김유신이라는 인물에게 쏟은 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갑옷 대신 평복을 입은 수호신 - 김유신묘의 십이지신상은 위엄보다 온화함으로 새겨졌어요.
위패를 모신 금산재도 함께
묘역 안에는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금산재라는 비각도 자리하고 있어요. 비각은 비석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씌워 세운 건물을 가리키는 말인데, 무덤뿐 아니라 장군을 기리는 제향 공간까지 함께 조성돼 있는 셈이라, 둘러보실 때 함께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옥녀봉 능선을 따라 조성된 묘역이라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기 좋고,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주변 풍경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김유신묘를 찾아갈 때 참고할 점
김유신묘는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2길 44-7에 자리하고 있어요. 정확한 개방 시간이나 입장료, 휴무일 정보는 따로 확인되지 않으니, 방문 전 지도 앱이나 경주시 문화관광 안내를 통해 최신 정보를 확인해보시는 걸 추천해요.
충효동은 경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이라 자차나 대중교통 이동 시간을 넉넉히 잡아두시는 게 좋아요. 왕릉 못지않은 규모의 무덤을 조용히 둘러보고 싶으신 분들께 특히 추천할 만한 곳이에요.
장군에게 신라가 갖춘 최고의 예우, 옥녀봉 자락에서 천천히 느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