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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Light고성 웹진 · 고성 인사이드 · 2026-10-07 · 읽는 시간 6분

서원 철폐령을 넘어 고성에 다시 세운 국산서원

고성이씨 후손들이 방촌 이당을 기리며 동해면에 지켜낸 이야기

서원 철폐령을 넘어 고성에 다시 세운 국산서원
고성 현지 사진

경상남도 고성군 동해면 외곡1길에 자리한 국산서원은 행촌 이암의 8세손인 방촌 이당을 기리기 위해 고성이씨 후손들이 세운 서원이에요. 이당이 지금의 자리에 모셔지기까지는 조선 후기 서원 철폐라는 큰 사건과, 그 뒤로 이어진 후손들의 오랜 노력이 함께 담겨 있어요. 지금 서 있는 건물은 1980년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강당과 사당, 문랑까지 서원이 갖춰야 할 구성을 두루 품고 있답니다.

천천히 그 과정을 따라가 보면서, 서원을 둘러보기 전에 어떤 이야기가 쌓여 있는지 먼저 살펴볼게요.

행촌 이암에서 방촌 이당까지, 고성이씨가 지켜온 이름

국산서원
국산서원

국산서원에 모셔진 방촌 이당(1567~1644)은 행촌 이암(1297~1364)의 8세손이에요. 두 사람 사이에는 꽤 긴 시간이 흐르지만, 고성이씨 후손들에게는 하나로 이어지는 이름이었어요. 조선시대 집안에서 먼 조상의 뒤를 이어 후손을 다시 기리는 일은 흔히 있었는데, 국산서원도 그런 마음에서 세워진 공간이에요.

그만큼 후손들에게 이당이라는 이름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자리였던 셈이에요.

조선시대 서원은 성리학을 배우는 교육 공간이면서, 동시에 학덕이 높았던 선현을 모시는 제향 공간이기도 했어요. 방촌 이당을 서원에 모신다는 것은 집안 어른들 사이에서 그만큼 존경받는 인물이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어요. 고성이씨 후손들이 그 이름을 지키려 애쓴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이런 제향의 전통은 집안의 역사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방법이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당이 처음부터 고성, 지금의 동해면에 모셔졌던 건 아니에요. 이야기는 충청도 청주에서 먼저 시작됐고, 그 뒤로 여러 번의 굴곡을 지나 지금의 국산서원 자리까지 이어졌어요. 다음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그 과정이 좀 더 선명하게 보여요.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제향의 터가 옮겨가는 과정 자체가, 이 서원이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셈이에요.

철폐령도 끝내지 못한 이름이, 결국 고성에서 다시 쓰였어요.

청주 구계서원에서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까지

국산서원
국산서원

방촌 이당은 원래 청주 구계서원에 동고 이준경, 낙재 서사원, 수암 박지화, 서계 이득윤과 함께 제향되어 있었어요. 여러 인물이 한 서원에 함께 모셔졌다는 것은 그만큼 구계서원이 비중 있는 자리였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당의 이름도 그 안에서 오랫동안 함께 전해졌어요.

여러 선현이 한자리에 모셔진 서원은 후손들 사이에서도 특별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그런데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정리하는 철폐령을 내리면서, 구계서원도 문을 닫고 건물이 허물어지는 상황을 맞게 됐어요. 많은 집안이 선조를 모실 자리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시기였고, 고성이씨 집안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당을 모실 공간이 사라진 것은 후손들에게 작지 않은 일이었을 거예요.

전국적으로 비슷한 사정을 겪은 집안이 많았던 만큼, 그 뒤의 대처 방식도 집안마다 조금씩 달랐어요.

자리를 잃은 뒤 후손들이 손을 놓지는 않았어요. 고성이씨 후손들이 모여 살던 곳에서 이당을 다시 모실 공간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이야기는 고성 동해면으로 옮겨가요. 청주에서 시작된 제향의 자리가 고성까지 이어지는 데에는 이렇게 후손들의 결심이 있었던 거예요.

1980년고성이씨 후손들이 국산서원을 새로 중건한 해

동해면 외곡리에서 다시 세운 국일사, 그리고 국산서원

국산서원
국산서원

고성이씨 후손들이 모여 사는 동해면 외곡리에서, 후손들은 국일사라는 이름으로 이당을 다시 모시는 공간을 창건했어요. 청주에서 잃어버린 제향의 자리를 고성에서 다시 이어간 셈이에요. 외곡리는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마을이라, 이당을 모시기에도 뜻이 통하는 자리였을 거예요.

집안이 모여 사는 마을에 제향 공간을 두면 후손들이 자주 찾아 예를 갖추기에도 수월했을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서 국일사 건물도 낡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상황을 맞게 됐어요. 이에 후손인 이경철과 이원수가 중건을 주관해 1980년에 건물을 새로 지었는데, 이전보다 규모가 더 커졌다고 해요. 지금 우리가 보는 국산서원의 모습은 이때 새로 갖춰진 거예요.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중건은 후손들의 품과 정성이 함께 들어가는 큰 결정이었을 거예요.

1980년의 중건을 거치면서 지금의 이름인 국산서원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청주에서 시작된 제향의 역사가 대원군의 철폐령을 지나, 결국 동해면 바닷가 마을까지 이어진 거예요. 이런 흐름을 알고 나면 서원을 둘러보는 느낌도 조금 다르게 다가올 거예요.

건물 하나하나가 그냥 오래된 한옥이 아니라, 이름을 지켜온 시간이 쌓인 자리라는 걸 떠올리면서 걸어보세요.

체크리스트
강당 4칸
사당(경의사) 3칸
문랑 3칸
포사 등 부속 건물

강당과 사당, 문랑까지, 국산서원을 둘러보는 법

국산서원은 강당 4칸, 사당 3칸, 문랑 3칸에 포사 등 부속 건물까지 갖춘 구성이에요. 각 건물이 맡은 역할이 다른데, 사당은 이당을 모시는 제향 공간이고 강당은 후손들이 모여 예를 갖추거나 뜻을 나누는 공간으로 볼 수 있어요. 문랑은 그 사이를 이어주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돼요.

서원을 둘러보실 때 이 세 공간의 역할을 떠올리면서 걸으면 이해가 한결 쉬워져요.

사당인 경의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졌어요. 맞배지붕은 지붕면이 앞뒤로 간결하게 떨어지는 형태를 말해요. 반면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데, 팔작지붕은 양쪽에 날개처럼 펼쳐진 지붕선이 더해져 좀 더 입체적인 인상을 주는 형태예요.

같은 서원 안에서도 건물마다 지붕 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보면서 둘러보시면 좋아요.

국산서원은 경상남도 고성군 동해면 외곡1길 151-44에 있어요. 동해면은 고성군의 남쪽 해안가에 자리한 면으로, 외곡리는 그 동해면에 속한 마을이에요. 찾아가실 때는 내비게이션에 정확한 지번 주소를 입력하시는 게 헤매지 않는 방법이에요.

주변에 다른 일정이 있다면 동해면을 오가는 길에 국산서원을 함께 들러보는 것도 괜찮은 동선이 될 거예요.

Cityzine 팁
국산서원은 상시 개방되어 있고 연중무휴로 운영돼요. 다만 사당이나 강당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면 미리 고성군 문화관광 관련 문의처(055-672-1433)로 연락해보시는 게 좋아요. 방문 전에 한 번 확인하고 가면 더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어요.
청주에서 동해면까지, 오랜 시간 이어온 이름을 국산서원에서 천천히 느껴보세요 🙂
#국산서원#고성 동해면#서원#방촌 이당#고성이씨
글 · Cityzine 편집부 · 2026-10-07 발행링크 복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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