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향교,
위패를 지금까지 모시는 유일한 향교
문헌으로 남은 최초의 향교가 지나온 시간을 따라가봤어요
강릉을 여행하다 보면 '향교'라는 이름이 붙은 곳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강릉향교는 그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곳이라고 해요. 문헌 기록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라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져서, 강릉시청 자료를 바탕으로 이 향교가 걸어온 길을 정리해봤어요.
문헌으로 남은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
강릉향교는 문헌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로 알려져 있어요.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된 국립 교육기관으로,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제사 기능과 지방민을 가르치는 교육 기능을 함께 담당했던 곳이에요. 전국 곳곳에 향교가 남아 있지만, 강릉향교는 그중에서도 기록으로 확인되는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해요.
게다가 강릉향교는 조선시대 향교에서 모셨던 성현과 선현들의 위패를 지금까지도 그대로 모시고 있는 유일한 향교라고 해요. 다른 지역 향교들이 여러 이유로 위패 봉안이 끊기거나 형태가 바뀐 경우가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이 점만으로도 강릉향교가 지니는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히 크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명륜당, 두 번의 소실을 넘어 다시 지어지다
강릉향교의 창건 시기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고려 말기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 교화를 위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러나 이후 소실되었다가, 1313년에 강원도 안무사였던 김승인이 화부산 아래에 다시 설립했다고 전해져요.
그런데 1411년에 또 한 번 소실되고 말았고, 강릉대도판관이었던 이맹상이 유지 68인과 함께 뜻을 모아 1413년에 중건했다고 해요. 두 번이나 무너졌다가 지역 인사들의 발의로 다시 세워졌다는 점에서, 강릉향교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지역 사회가 계속해서 지켜온 공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가장 큰 명륜당, 남루에서 교육 공간으로
향교 맨 앞쪽에 자리한 명륜당은 처음부터 지금 같은 교육 공간은 아니었다고 해요. 1413년에는 '남루'라는 누각으로 처음 세워졌고, 이후 중수를 거듭하다가 대대적인 중수를 마친 1644년 이후부터 비로소 교육 공간인 명륜당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전해져요.
지금의 명륜당은 전면 11칸, 측면 2칸 규모로, 우리나라 향교의 명륜당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강릉향교의 주요 건물 중에서도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전랑 등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고 하니, 향교 전체가 하나의 큰 문화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예요.
위패를 모시고 가르치던, 지금은 제향만 이어가는 자리
조선시대 강릉향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들을 가르치던 정식 교육기관이었다고 해요.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는 국가 공인 기관이었던 셈이니, 당시로서는 상당히 중요한 위상을 지녔던 곳이라 할 수 있어요.
지금은 그런 교육적 기능은 사라졌지만,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와 보름에는 분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요. 석전은 성현들에게 지내는 제사 의식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런 전통이 지금까지도 전교 1명과 장의 몇 명의 손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방문 전 확인해두면 좋은 것들
강릉향교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명륜로 29, 교동에 자리하고 있어요. 다만 구체적인 관람 시간이나 입장료, 휴무일 정보는 따로 확인되지 않고 있어서, 방문 전에 강릉시 문화재 관련 부서나 지도 앱을 통해 최신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지금도 제향 기능을 이어가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재인 만큼, 행사가 있는 날에는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어요. 조용히 위패를 모시는 공간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예의를 갖춰 둘러보시면 더 뜻깊은 방문이 될 것 같아요.
위패를 지금까지 그대로 모시는 유일한 향교라니, 그 자체로 특별한 곳이에요. 교동을 지나신다면 잠시 들러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