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팽년과 조규운을 기리는 강진 주봉서원
두 번 지어진 서원에서 만나는 조팽년과 조규운 이야기
전남 강진군 옴천면, 주봉산 자락에 자리한 주봉서원은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인 서원의 모습을 오늘까지 간직한 곳이에요.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사립 교육기관인데, 주봉서원은 그 가운데서도 암행어사를 지낸 정치가이자 문장가 조팽년과 정조 때 성균관 교수를 지낸 조규운, 두 인물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에요. 산자락에 조용히 들어앉은 모습이지만, 들여다보면 조선 중기부터 이어져 온 긴 사연을 품고 있어서 천천히 둘러볼 만해요.
서원이 품은 두 인물, 조팽년과 조규운
주봉서원이 제향하는 조팽년은 조선시대 암행어사를 지낸 정치가이자 문장가로 알려져 있어요. 암행어사는 왕명을 받아 지방관의 비리와 민생을 몰래 살피던 중요한 직책이었던 만큼, 조팽년이 지역 사회와 백성들 사이에서 쌓은 신망도 적지 않았을 거예요. 문장가로도 이름을 남겼다고 하니, 글솜씨로도 인정받은 인물이었던 셈이에요.
함께 모셔진 조규운은 정조 때 성균관 교수를 지낸 인물이에요.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 교육기관이었으니, 그곳에서 교수를 지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대 학문적으로 인정받던 분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암행어사와 성균관 교수,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두 분을 한 서원에서 함께 모시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에요.
서원이라는 공간은 본래 제사와 교육, 두 가지 기능을 함께 품는 곳이에요. 그래서 서원에 가면 조상을 기리는 사당 영역과 글을 배우던 강학 영역이 나란히 자리한 구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주봉서원 역시 이런 전통적인 서원의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요. 서원은 조선 중기부터 전국 각지에 세워지기 시작한 교육기관으로, 중앙의 관학인 성균관과 달리 지방 유림들이 자발적으로 세워 선현을 기리고 인재를 길러낸 사립 교육기관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두면 좋아요.
두 번 지어진 서원, 사라졌다 돌아온 사연
주봉서원은 1624년, 인조 2년에 도내 유림들이 주봉산 아래 기좌리 좌척마을에 처음 세운 서원이에요. 유림은 유교를 공부한 선비들을 가리키는 말로, 조선시대에는 이런 유림들이 지역 사회의 여론과 교육을 이끄는 중심 역할을 했어요.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곳인 만큼, 당시 지역 사회에서 조팽년과 조규운을 기리고 그 가르침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분명히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하지만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이 내려지면서 주봉서원도 함께 헐리고 말았어요. 서원 훼철령은 전국의 수많은 서원이 면세 등 특권을 누리며 폐단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내려진 조치였는데, 이때 전국 대부분의 서원이 문을 닫아야 했던 큰 사건이었어요. 주봉서원도 그 흐름을 피해가지 못한 셈이에요.
사라졌던 주봉서원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71년이에요. 처음 세워졌던 좌척마을이 아니라 지금의 옴천면 자리로 옮겨 다시 지어졌는데, 공식 자료에는 이때 지어진 건물이 다소 초라한 편이라고 설명돼 있어요. 훼철된 지 100년 넘게 지난 뒤에야 다시 지어졌다는 점에서, 주봉서원의 재건은 단순한 복원을 넘어 지역에서 두 분을 향한 마음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주봉서원'이라는 이름은 처음 터를 잡았던 주봉산에서 따온 것으로, 자리는 옮겼어도 이름만은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셈이에요.
전학후묘 구조로 둘러보는 주봉서원
주봉서원은 앞쪽에 배움의 공간을, 뒤쪽에 제사의 공간을 두는 전학후묘 형식을 따르고 있어요. 그래서 서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중앙에 자리한 강당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지역민을 가르치던 강학 공간이에요. 강당은 유생들이 모여 강론을 듣고 토론하던 공간으로, 전통적인 서원 건축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꼽혀요.
강당 뒤쪽으로는 솟을대문으로 된 내삼문이 서 있고, 그 안쪽에 사우인 주봉사가 자리하고 있어요. 주봉사에는 조팽년과 조규운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서, 서원 전체에서 가장 안쪽이자 핵심이 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솟을대문은 가운데 칸이 양옆보다 높게 솟은 형태의 문이라, 멀리서도 눈에 띄는 편이에요.
강당 앞에는 세 개의 비석이 나란히 서 있는데, 각각 선조에게 올린 시와 이순신 장군에게 올린 시, 그리고 한석봉에게 쓴 글이 새겨져 있어요.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명장으로, 한석봉은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로 널리 알려져 있죠. 조팽년이 이런 인물들과 글로 교류했다는 흔적을 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강당과 내삼문, 주봉사, 비석까지 규모가 크지 않아 차례로 둘러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가볍게 들러보기 좋은 곳이에요.
헐렸던 자리를 옮겨서라도 다시 세운 건, 오래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었겠죠.
옴천면 찾아가는 길, 강진의 다른 곳과 함께
주봉서원은 강진군 옴천면 장강로 1785-3에 자리하고 있어요. 내비게이션에 이 주소나 '주봉서원'을 검색하면 바로 길 안내를 받을 수 있어요. 강진군은 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다산초당이나 고려청자 유적지로도 널리 알려진 지역이에요.
주봉서원은 이런 강진군 안에서도 비교적 산이 깊은 옴천면 쪽, 그러니까 주봉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두면 좋아요.
서원까지는 승용차로 이동하는 게 편하고, 주차 공간도 마련돼 있다고 안내되어 있어요. 다만 유모차 대여나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한 곳은 아니라고 하니, 미리 알아두면 현장에서 당황할 일이 줄어들 거예요.
향사일, 그러니까 조팽년과 조규운을 기리는 제사는 음력 3월 중정일에 치러진다고 해요. 평소에는 조용히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이 시기를 알고 찾아가면 서원이 본래 어떤 역할을 하던 곳인지 조금 더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을 거예요. 강진군 안에는 다산초당이나 고려청자박물관처럼 이미 널리 알려진 명소들도 있으니, 주봉서원을 들른 김에 강진군 곳곳을 함께 돌아보는 일정을 짜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두 번 지어진 서원 앞에서, 잊지 않으려는 마음 하나는 오래가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