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향교,
조선 선비 정신을 지키는 600년의 배움터
1400년대 추정 창건,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지켜온 교육의 전통
강진의 중심부에 자리한 강진향교는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윤탁이 대성전에 은행나무를 심도록 권장하였다는 기록과 현재 은행나무의 나이를 짐작해보면 조선 전기인 140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600년 가까이 강진의 교육과 문화를 지켜온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겪고 다시 일어선 향교
강진향교 역시 다른 건물들과 같이 임진왜란의 병화를 입었어요. 광해군 5년인 1613년에 이 지역 출신 입방자들이 의금을 내고 군수 정인의 도움을 받아 사마재를 건립하였고, 그 후 1675년에 본격적으로 향교를 건립하게 되었답니다.
이후 1858년에는 군수 심의찬이 향교를 중수했고, 1901년과 1919년에는 대성전을 중수하였으며, 1935년에는 명륜당을 중수하여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하니, 강진의 역대 현감들이 얼마나 향교를 소중히 여겼는지를 알 수 있어요.
전학후묘의 전통 배치
현재 강진향교에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 동재, 서재, 명륜당 등이에요. 앞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배움의 공간을 두고, 뒤쪽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제사공간을 두는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어서, 전통 향교의 정신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답니다.
400년 은행나무와 건축의 세부
대성전 안에는 5성, 송조 4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어요. 대성전의 좌측에는 수령 약 400년 된 은행목이 한 그루 자리 잡고 있다고 하니, 이 나무만 봐도 강진향교의 긴 역사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성전에 들어가는 협문이 좌우에 있으며, 건축 형식을 보면 대성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이고, 지붕은 겹처마로 맞배지붕이라고 해요.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이라고 하니, 조선시대 전통 건축의 특징을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이어지는 향교의 전통
강진향교는 현재도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다고 해요. 전교 1명과 장의수명이 운영을 담당하면서, 강진의 유교 문화 전통을 현대에 계승하고 있답니다. 600년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배움터로서 강진향교의 역할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400년 은행나무 곁에서 조선시대 선비 정신을 만나세요. 강진의 배움터, 향교에서 역사를 걷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