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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Light강진 웹진 · 강진 인사이드 · 2026-09-26 · 읽는 시간 6분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가 남은 강진 고성사

백련결사의 인연부터 정약용과 혜장선사의 교유까지 담은 이야기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가 남은 강진 고성사
강진 현지 사진

전남 강진군 강진읍 고성길에 자리한 고성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예요. 고려시대 백련결사를 이끈 원묘국사 요세스님과 인연이 깊고, 조선 후기에는 강진에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혜장선사와 교유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오래된 이름을 여러 번 거쳐 지금의 고성사로 불리게 된 이 절을 천천히 둘러볼까요?

백련결사와 함께 지어진 절, 고성사의 시작

고성사(강진)
고성사(강진)

고성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에 속한 말사예요. 큰 본사 아래 딸린 작은 절을 말사라고 부르는데, 고성사도 그중 하나로 오랜 시간 대흥사와 이어져 내려온 사찰이라고 해요. 강진읍 고성길에 자리하고 있어서 강진읍내를 오가는 길에 함께 들르기 좋은 위치이기도 해요.

전남 강진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도 널리 알려진 고장이라, 이 지역을 둘러보는 김에 고성사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분들도 많다고 해요.

기록에 따르면 고성사는 1211년, 그러니까 고려 희종 7년에 지어졌다고 전해져요. 이 해는 원묘국사 요세스님이 백련결사를 이끌던 시기와 맞닿아 있는데, 요세스님이 인근에 있는 만덕산 백련사를 중창할 때 고성사도 함께 지어진 말사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백련결사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교 신앙 결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어서, 그 흐름 속에서 고성사가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어요.

백련사와 고성사가 나란히 역사를 시작한 셈이니, 두 절의 인연을 함께 떠올리며 둘러보면 이야기가 더 풍성해질 수 있어요.

시간이 흘러 1799년, 조선 정조 23년에 편찬된 자료에는 고성사가 고성암이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어요. 절이나 암자를 부르는 이름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뀌곤 하는데, 고성사 역시 고성암이라 불리던 시절을 지나 지금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어요. 이름 하나에도 여러 시대를 거쳐온 흔적이 담겨 있는 셈이라, 절을 둘러볼 때 이런 이름의 변화까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켜온 절이라는 사실이 이름의 변천사에서도 드러난다고 할 수 있어요.

다산 정약용과 혜장선사가 마주 앉았던 자리

고성사(강진)
고성사(강진)

고성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에요. 조선 후기 강진으로 유배를 오게 된 정약용은 이 지역 곳곳에 학문과 관련된 흔적을 남겼는데, 고성사도 그중 한 곳이에요. 1805년 가을, 정약용은 고성사에 머물며 혜장선사와 교우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유배라는 고단한 시절 속에서도 이어진 이 인연이 지금까지 고성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으로 남아 있어요.

유배지에서 만난 학자와 스님, 산사에서 나눈 대화가 오늘의 이야기로 남았어요

혜장선사는 당대 이름난 학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약용과 나눈 교유는 단순한 친분을 넘어 서로의 학문에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였다고 전해져요. 두 사람이 마주 앉았을 고성사의 공간을 걸으면서, 유배라는 고단한 시절 속에서도 이어졌던 사람 사이의 인연을 떠올려보는 것도 이 절을 둘러보는 재미 중 하나예요. 학자와 스님이라는 서로 다른 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이야기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줘요.

같은 해인 1805년에는 정약용이 주역 연구 자료가 담긴 경함을 고성사로 옮겼다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학문에 몰두하던 정약용이 자신의 소중한 연구 자료를 이 절에 맡겼다는 사실에서, 고성사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정약용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고성사를 둘러보면서 이 시기 정약용이 어떤 마음으로 연구에 몰두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이 절을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삼존불상과 탱화들

고성사(강진)
고성사(강진)

고성사에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 요사가 있어요. 그중 대웅전에는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어서, 고성사를 찾는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세 분의 불상이 나란히 모셔진 모습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대웅전을 둘러보는 큰 이유 중 하나예요.

대웅전에는 목조삼존불상 뒤로 후불탱화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어요. 영산회상도와 지장탱화, 감로탱화, 신중탱화 이렇게 네 점의 탱화가 대웅전을 채우고 있는데, 각각 그려진 시기와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고 해요. 불상 하나만 보고 지나치기보다 뒤에 걸린 탱화들까지 하나씩 살펴보면 대웅전을 훨씬 풍성하게 둘러볼 수 있어요.

1933대웅전 지장탱화가 제작된 해

이 가운데 지장탱화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33년에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100년 가까운 시간을 대웅전 한편에서 지켜온 셈이니, 불상과 탱화를 천천히 살펴보면서 그 세월의 흔적을 함께 느껴보는 것도 좋겠어요. 나머지 세 점의 탱화도 각자의 시기에 그려진 만큼, 서로 비교해가며 살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칠성각과 목조삼존불상에 얽힌 사연, 그리고 찾아가는 길

대웅전 옆에 자리한 칠성각에도 탱화 4점이 모셔져 있어요. 칠성각은 대웅전과 함께 고성사를 이루는 주요 전각 중 하나로, 대웅전을 둘러본 뒤 이어서 살펴보기 좋은 공간이에요. 두 전각을 차례로 둘러보면 고성사가 지닌 불교 미술의 면면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어요.

체크리스트
대웅전 목조삼존불상과 후불탱화 살펴보기
칠성각의 탱화 4점 둘러보기
백련사와의 인연 떠올려보기
정약용과 혜장선사의 이야기 되짚어보기

고성사 목조삼존불상 중 한 분은 십여 년 전 일본으로 팔려갈 뻔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고 해요. 다행히 지금은 대웅전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런 사연을 알고 나면 불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더 특별해질 수 있어요.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켜온 불상이 겪었을 우여곡절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눈여겨보게 되는 대목이에요.

고성사는 강진읍 고성길에 있어서 강진읍내에서 오가기 어렵지 않은 편이에요. 주차도 가능하다고 하니 차로 이동해도 무리가 없고, 상시 개방에 연중무휴로 운영된다고 하니 방문 시기를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다만 유아차나 신용카드 이용이 어려울 수 있다고 하니, 이 부분은 미리 참고하고 방문하면 더 편하게 둘러볼 수 있어요.

강진에서 다산 정약용의 유배 흔적을 함께 찾아보는 여정이라면, 고성사를 그 동선에 포함시켜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Cityzine 팁
고성사는 상시 개방, 연중무휴로 운영되고 주차도 가능하다고 해요. 다만 유아차와 신용카드 이용은 어려울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고, 자세한 사항은 방문 전 안내전화(061-434-3710)로 확인해보세요.
다산과 혜장선사가 나눴을 대화를 상상하며 고성사를 걸어보세요 🍃
#고성사#강진읍#관광지#정약용#백련사
글 · Cityzine 편집부 · 2026-09-26 발행링크 복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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