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웹진강진 인사이드 · 2026-09-10 · 읽는 시간 3분

강진 금산원,
호국 충절의 가문이 모신 오현의 영정

임진왜란 의병과 충효의 전통, 5명의 위인을 배향한 원

강진 금산원, 호국 충절의 가문이 모신 오현의 영정
강진 현지 사진

강진의 군동면에 자리한 금산원은 1842년에 창건한 언양 김 씨 원사에요. 처음에는 감성재라 불렸으며, 위열 김취려를 주벽으로 김자수와 김성진을 배향하여 삼위를 모셨다고 합니다. 이곳은 한 가문의 제례 공간을 넘어, 강진의 역사와 정신이 담긴 문화 유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옮겨 온 정렬사와 현재의 오현 배향

금산원
금산원

금산원의 역사는 운영의 어려움을 겪은 나주의 정열사와 얽혀 있어요. 1940년 경 운영이 어려워진 나주의 정열사를 이곳으로 옮겨 정렬사로 개명하고, 김천일을 주벽으로 김자수, 김상건 삼위를 배향했다고 합니다. 그 뒤 1964년 정렬사가 다시 나주로 옮겨지자, 김취려를 주벽으로 모시고 김자수, 김천일, 김성진, 김상건 오위를 향사하면서 현재의 금산원이라는 액호로 개명하게 되었어요.

고려의 명장 김취려

금산원
금산원

금산원이 주벽으로 모신 김취려는 고려의 명장으로, 박달제 등에서 거란군을 물리쳐 영남을 지킨 공훈을 남겼다고 해요. 그는 현재의 국무총리격인 문화시중을 역임하기도 했으니,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학문으로 제자를 양성한 김자수

김자수는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응교와 강진현감, 강원감사직을 역임했다고 해요. 관직을 마친 후에는 창평의 월봉산에 상월정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했으니, 무(武)의 전통에서 문(文)의 전통으로 이어진 가문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임진왜란 의병 김천일과 그의 가족

김천일은 나주에서 태어나 이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창의사의 군호를 받았다고 해요. 하지만 진주성에서 아들 상건과 함께 순절하였는데, 이것이 이 가문의 충효 정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성진은 유년부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임란이 일어나자 4종 형인 김천일 막하에서 아들 전, 홍과 함께 군량미를 조달하고 보급했다고 해요. 전쟁 중에도 실질적인 지원으로 의병 활동을 뒷받침한 것이죠.

김상건은 김천일의 장남으로, 임란 때 종군하여 진주산성 싸움에서 부자가 함께 순절했다고 해요. 이렇게 한 가문이 충효의 가치를 목숨 바쳐 실천한 모습은, 강진 지역의 유교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물의 구성과 현재의 운영

금산원의 건물은 4동으로 강당, 신실, 내삼문, 외삼문이 있다고 해요. 건물이 퇴락됨에 따라 1981년 2차례 중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건물들 안에는 고려부터 임진왜란까지 강진 지역 유림의 정신적 자산이 가득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방문 전에 현지에 미리 문의해주세요.
고려의 명장부터 임진왜란 의병까지, 호국충절의 가문이 모신 5명의 위인을 만나는 곳입니다.
#금산원#김취려#강진 문화유산#임진왜란 의병#충효 가문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10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함께 둘러보면 좋은 지역전국 118개 지역 인덱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