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성주사지,
천 명의 승려를 품었던 신라 최대 수도원
통일신라 9산선문의 중심지, 발굴되는 천 년의 역사

보령 성주사지는 보령시 동부 성주산(676. 7m) 남쪽 골짜기에 있는 절터예요. 성주사는 통일신라 말기 9산선문 중 하나로 이름이 높았던 곳으로, 아주 번성했던 사찰이라고 해요.
이곳이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위치와 종교적 영향력 때문이었어요. 성주사는 6세기경 백제 법왕에 의해 오합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통일신라 말기로 들어오면서 성주사로 개명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전성기 성주사는 총 천여 칸, 승려 2,000여 명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였어요.
이런 규모를 생각해보면 당시 불교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천 년의 시간을 담은 발굴 유물
절터에서는 백제시대에서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는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어요. 이는 성주사가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종교적 중심지로 기능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예요. 사적으로 지정된 성주사지에는 현재 국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보물 오층 석탑, 보물 중앙삼층석탑, 보물 서삼층석탑,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석등, 충청남도 문화재자료인 석계단과 석불입상 등이 남아 있어요.
이들은 신라 미술과 건축 기술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에요.
최치원의 글과 고운의 예술혼
발굴 조사에 의해 금당지, 삼천불전지, 회랑지, 중문지 등의 건물터가 드러났어요. 절터 북서쪽에는 멋을 부려 세운 전각이 있는데, 그 안에 부도비가 있고 비문은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이 글을 짓고 그의 조카 최인연이 글씨를 썼다고 해요. 지금은 바로 옆에 세워진 성주사지 천년역사관에서 전시물들을 관람할 수 있어요.
최치원의 글씨와 최인연의 손놀림이 만들어낸 이 비는 단순한 추모의 대상이 아니라 신라 서예와 미학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어요.
보령 성주사지는 국도 40호선에서 심원계곡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어요. 주변에는 성주산 외에 보령무궁화수목원, 보령석탄박물관, 보령시청소년수련관, 심원동계곡(성주계곡), 성주면 소재지 등이 있어서 역사 탐방과 함께 자연 관광도 함께 즐길 수 있어요.
천여 칸의 대사찰이 남긴 유물들이 신라의 영화를 말해줄 거예요. 역사와 마주하는 경험, 성주사지에서 시작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