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서쪽을 지켜온 비보사찰,
서악사
경문왕 때 창건 설화부터 1744년 이전 기록까지 남은 절

경상북도 안동시 서악길 67-14, 태화동에 자리한 서악사는 통일신라 후기부터 이어져 온 이야기를 품고 있는 절이에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멀리서 보면 작은 산사처럼 보이지만 안동 읍치를 지키던 비보사찰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보는 눈이 달라져요. 원통전과 요사채, 그리고 입구의 바위 글귀까지 천천히 둘러보면 몇 백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공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어요.
통일신라에서 조선까지, 서악사가 걸어온 길
서악사는 통일신라 후기 경문왕 때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져요. 도선국사는 풍수지리와 비보 사상으로 널리 알려진 승려로,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 초까지 이어지는 여러 사찰 창건 설화에 이름이 자주 등장해요. 경문왕이 다스리던 시기는 신라 하대에 해당하는 때로, 이 무렵 지방 곳곳에 지덕을 보완한다는 명목의 절들이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요.
서악사의 창건 설화도 이런 흐름 속에서 이해하면 좀 더 또렷하게 그려져요.
서악사의 역사를 전하는 기록으로는 「서악사기」와 「태화산운대사상량기문」이 있어요. 이 기록에 따르면 1744년, 조선 영조 20년에 태화산 중턱에 있던 서악사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해요. 절을 옮긴다는 건 단순히 건물을 새로 짓는 것과는 다른 결정이라서, 당시에도 상당한 공력이 들어간 불사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어요.
지금 서악길을 따라 올라가며 만나는 서악사의 자리가 바로 이때 정해진 터인 셈이에요.
자리를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748년, 영조 24년에는 대규모의 중창 불사가 있었다고 전해져요. 옮긴 터에 자리를 잡은 뒤 다시 한 번 크게 손을 본 셈이니, 18세기 중반의 짧은 기간 동안 서악사가 두 번의 큰 전환점을 지났다고 볼 수 있어요. 지금 남아 있는 건물과 유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시기를 전후해 만들어진 것들이라, 서악사를 둘러볼 때는 18세기 중반이라는 시간대를 기억해두면 도움이 될 거예요.
안동 읍치를 지킨 비보사찰, 서악의 자리
서악사는 본부, 그러니까 옛 안동 읍치의 지덕을 돕기 위해 세워진 비보사찰로 전해져요. 비보사찰은 풍수적으로 약하다고 여겨지는 지점을 절의 힘으로 보완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개념으로, 우리나라 곳곳의 오래된 절에서 비슷한 유래를 찾아볼 수 있어요. 서악사도 이런 전통 속에서 특정한 방위를 맡아 세워진 절이라는 점이 특징이에요.
안동 읍치를 중심으로 네 방위, 즉 사악에 각각 절이 자리했다고 전해져요. 동쪽은 동악이라 불리며 절이 있었고, 남쪽은 남산으로 순천사가, 서쪽은 서악으로 서악사가, 북쪽은 금학산으로 수정사가 그 역할을 맡았다고 해요. 이렇게 네 방위를 절로 둘러싼 구조는 안동이라는 고을이 지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은 교통과 지도가 발달해서 방위를 따라 절을 찾아다니는 일이 쉽지 않지만, 서악사가 서쪽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가면 안동이라는 고을의 옛 구조를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어요. 태화동이라는 지금의 행정동 이름과 서악길이라는 도로명도 이 절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니, 걸어 올라가며 천천히 느껴보시면 좋겠어요.
원통전과 그 안에 담긴 유물들
서악사의 건물은 크게 원통전과 요사채 2동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원통전은 서악사의 주법당으로, 절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중심 건물이에요. 요사채는 승려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법당과 함께 절의 살림을 꾸려가는 역할을 해요.
원통전 안에 모셔진 불상은 근래에 제작된 것이라고 해요. 반면 법당 안에 걸린 탱화 6점은 보존 가치가 있는 유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3점은 1770년, 영조 45년에 만들어졌고 나머지 1점은 1868년, 고종 5년에 제작되었다고 전해져요. 오래된 불상이 아니라 탱화 쪽에서 서악사의 세월을 가장 또렷하게 느낄 수 있는 셈이에요.
법당 안에는 동종도 함께 자리하고 있어요. 이 동종은 1933년 3월에 조성된 것이라 연대 자체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범종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서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고 해요. 근대에 만들어진 종이 옛 양식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점은, 전통이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방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오래된 자리일수록, 새로 더해진 것들도 그 결을 따라간다
바위에 새겨진 글귀와 장화식의 자취
서악사 입구의 바위에는 '연파독역산(蓮坡讀易山)'이라는 글귀가 남아 있어요. 한자를 풀어보면 연꽃 핀 언덕에서 역경을 읽은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이 짧은 글귀 안에 한 인물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요.
이 글귀는 조선 후기 한성판윤을 지낸 장화식이 이곳에서 「역경(易經)」을 읽었다는 뜻으로 전해져요. 장화식은 1853년에 태어나 1938년에 생을 마친 인물로, 한성판윤이라는 조선시대 지방관을 지낸 이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가 어떤 계기로 서악사 일대에서 역경을 읽었는지까지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지만, 바위에 글귀를 남길 만큼 이 자리에 특별한 애착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어요.
절 뒤편에는 장화식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고 해요. 바위의 글귀와 뒤편의 묘가 함께 남아 있다는 점에서, 서악사와 장화식이라는 인물 사이의 인연이 단순히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걸 짐작해볼 수 있어요. 절을 둘러볼 때 입구의 바위와 뒤편의 묘까지 함께 챙겨보면 이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몇 백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서악사, 천천히 걸으며 그 이야기를 하나씩 찾아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