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웹진›낙동강 굽어보는 안동 호계서원의 발자취
Spot Light안동 웹진 · 안동 인사이드 · 2026-09-30 · 읽는 시간 6분

낙동강 굽어보는 안동 호계서원의 발자취

이름도 자리도 여러 번 바뀐 안동 서원의 굴곡진 이야기를 따라가 봐요

낙동강 굽어보는 안동 호계서원의 발자취
안동 현지 사진

경북 안동시 도산면,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호계서원이 자리하고 있어요. 안동 지방을 대표하는 서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인데, 지금의 이름도 지금의 자리도 처음 그대로는 아니라는 점이 특히 흥미로워요. 창건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이름과 자리의 변천을 하나씩 따라가 보면, 안동이라는 지역이 유교 문화와 함께 걸어온 시간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돼요.

여강서원에서 시작된 이야기

호계서원
호계서원

호계서원의 역사는 조선 선조 6년, 그러니까 15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처음 지어질 때는 지금의 이름이 아니라 여강서원이라는 이름이었고, 자리도 지금과는 다른 월곡면 도곡동이었다고 해요. 안동을 대표하는 유학자 퇴계 이황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출발했다는 점이 여강서원의 첫 모습이었어요.

이름이 바뀌고 자리가 옮겨져도, 지켜온 뜻은 그대로 이어져요.

선조 6년이면 조선 중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이 무렵 안동을 비롯한 경북 지역 곳곳에는 유학자를 기리는 서원이 여럿 세워지고 있었어요. 여강서원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지역 유림들이 힘을 모아 퇴계의 학문과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안동이 지금까지도 '선비의 고장'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경에는 이런 서원 문화가 자리하고 있어요.

지금 호계서원이 있는 도산면은 도로명 주소에도 '퇴계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동네예요. 지금은 퇴계 이황의 위패가 도산서원에 모셔져 있다고 하니, 이 일대가 퇴계와 인연이 깊은 지역이라는 걸 짐작해볼 수 있어요. 도산면 일대를 둘러볼 계획이라면 호계서원과 함께 주변 유적도 같이 살펴보는 코스를 미리 짜보는 것도 좋겠어요.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면 지도 앱으로 도산면 일대를 한 번 훑어보고 동선을 잡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학봉과 서애, 두 분을 함께 모시다

호계서원
호계서원

여강서원이 처음 지어지고 한참 지난 광해군 12년, 1620년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어요. 그동안 퇴계 이황 한 분만 모시던 자리에 학봉 김성일과 서애 유성룡, 두 분의 위패가 함께 모셔지게 된 거예요. 이때부터 여강서원은 퇴계와 그 제자들을 함께 기리는 자리로 그 의미가 한층 커졌다고 볼 수 있어요.

한 서원에 세 분의 위패를 함께 모신다는 건 당시로서도 의미가 큰 일이었을 거예요. 조선시대 서원은 단순히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넘어, 지역 유림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의견을 나누는 거점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세 분 모두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관료로 이름을 남긴 분들인 만큼, 이분들을 함께 모신 서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무게감이 남달랐을 거예요.

1620학봉 김성일·서애 유성룡의 위패를 함께 모시게 된 해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이때의 합사가 훗날 호계서원의 정체성을 만든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세 분의 위패는 시간이 흐르며 각각 다른 서원으로 나뉘어 모셔지게 되는데, 그 출발점이 바로 이 1620년의 합사였던 셈이에요. 서원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하나의 사건이 훗날 여러 갈래로 이어지는 모습을 종종 만나게 돼요.

숙종에게 받은 이름, '호계'

호계서원
호계서원

여강서원이 지금의 이름인 호계서원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숙종 2년, 1676년의 일이에요. 이때 임금으로부터 '호계'라는 이름과 함께 토지와 노비 등을 하사받았다고 해요. 임금이 직접 이름을 내려주고 여러 지원을 함께 내리는 걸 흔히 '사액'이라고 부르는데, 호계서원도 이런 사액을 받은 서원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에요.

하지만 호계서원의 역사가 순탄하게만 이어진 건 아니었어요.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정리하던 서원철폐령 시기에 호계서원도 훼철되는 아픔을 겪었거든요.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은 전국 수백 곳의 서원에 영향을 미친 큰 사건이었는데, 호계서원 역시 그 흐름을 피해가지 못한 거예요.

오랜 역사를 지닌 서원이라 해도 시대의 큰 흐름 앞에서는 예외가 되기 어려웠던 셈이에요.

체크리스트
1573년 여강서원으로 창건
1620년 학봉·서애 위패 합사
1676년 숙종에게 '호계' 이름과 토지·노비 하사받음
1973년 안동댐 건설로 현재 자리로 이전

다행히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어요. 훼철된 지 7년 뒤에 강당만이라도 새로 지어졌고, 그 강당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해요. 화려했던 전성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진 않지만,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명맥을 이어온 그 자체로 의미가 깊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안동댐과 함께 옮겨진 자리, 지금의 호계서원

지금 호계서원이 자리한 도산면 땅은 원래부터 있던 자리가 아니에요.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져 다시 지어졌다고 해요. 여강서원에서 시작해 호계서원이라는 이름을 거쳐 자리까지 한 차례 더 옮겨온 셈이니, 이 작은 서원 하나에 안동의 역사가 그대로 압축돼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에요.

서원을 둘러보면서 이름과 자리가 바뀌어온 순서를 하나씩 떠올려보면, 단순히 건물 하나를 구경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재미있는 건 지금 호계서원에는 세 분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지 않다는 점이에요. 퇴계 이황의 위패는 도산서원에, 학봉 김성일의 위패는 임천서원에, 서애 유성룡의 위패는 병산서원에 각각 나뉘어 모셔져 있다고 해요. 한때 세 분을 함께 모셨던 호계서원의 역사를 알고 나면, 지금의 이렇게 나뉜 모습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와요.

그래도 호계서원의 명맥은 완전히 끊기지 않았어요. 해마다 1번씩 당회가 이곳에서 열린다고 하니,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어도 서원으로서의 역할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에요.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안동의 유교 문화가 겪어온 변화를 가만히 떠올려보는 것도 이곳을 찾는 좋은 이유가 될 수 있어요.

서원을 둘러본 뒤에는 주변 풍경을 함께 감상하면서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추천해요.

Cityzine 팁
호계서원은 연중무휴로 상시 개방돼 있어서 정해진 시간 없이 찾아가 볼 수 있어요. 자세한 안내가 필요하면 방문 전에 안동시청 문화유산과(054-840-5229)로 문의해보는 걸 추천해요.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안동의 유교 역사를 천천히 곱씹어보고 싶다면, 호계서원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세요 🙂
#호계서원#경북 안동#관광지#서원#낙동강
글 · Cityzine 편집부 · 2026-09-30 발행링크 복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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