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산서원,
강항 선생이 남긴 학문의 정취 속으로
조선 중기 의병장 겸 학자 강항을 추모하는 서원, 일본에 성리학을 전한 위대한 유산
영광군 불갑면 강항로에 자리한 내산서원은 조선 중기 문신 강항(1567~1618)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에요. 강항이라는 이름이 낯설 수 있지만, 그의 삶을 들어보면 이 서원이 왜 영광에 남겨졌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비록 옛날 이야기지만, 그의 절개와 학문은 지금도 이 땅의 정신으로 살아 숨 쉬고 있어요.
정유재란 속 포로가 되어도, 조국을 지킨 의병장
강항은 공조좌랑과 형조좌랑의 직책에 있던 중 정유재란이 터졌어요. 그는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는 비운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이 전부가 아니었어요.
일본에 있으면서도 그나라의 역사와 지리 등을 알아내어 고국으로 보냈다고 하니, 오직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어요. 더 놀라운 건 동시에 그는 일본에 성리학을 전하기까지 했다는 점이에요.
선조 33년(1600), 무려 6년간의 포로 생활을 뒤로하고 드디어 귀국한 강항은 벼슬을 사양하고 독서와 후진 양성에만 전념했다고 해요. 그의 남은 인생은 오직 배움의 길로만 채워졌던 거죠.
서원의 구조에서 보이는 전학 후묘의 배치
내산서원은 인조 13년(1635년)에 나라에서 '용계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고, 숙종 28년(1702년)에 고쳐 세워졌대요. 일제강점기 때도 고쳐졌고,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앞쪽에 교육 공간을 마련하고 뒤쪽에 제사 공간을 마련한 전학 후묘의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이런 구조는 조선 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형식이라고 해요.
교육 공간인 강당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했다고 하니, 계절마다 다른 느낌으로 느껴질 것 같아요.
뒤에 있는 내삼문을 지나면 강항의 위패를 모신 작은 규모의 사당이 나타나고, 왼쪽 산기슭에는 강항의 묘소가 있다고 해요. 서원을 한 바퀴 돌면서 강항의 삶과 철학을 천천히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일본 포로로도 조국을 배신하지 않은 강항의 절개, 이 서원에서 그 정신을 만나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