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국공신 이천우의 영정을 모신 묘장영당
1616년 봉안부터 1934년 중건까지, 묘량면 영당이 지나온 시간을 따라가봐요
전남 영광군 묘량면에 자리한 묘장영당은 조선 개국공신 이천우의 영정을 모신 곳이에요. 1616년, 그러니까 광해군 8년에 향내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영당으로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어요. 훼철과 중건을 거치며 400년 가까운 시간을 이어온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나씩 따라가 볼게요.
이천우 영정을 모신 사연
묘장영당에 영정으로 모셔진 이천우는 조선을 세우는 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에요. 공식 설명에 따르면 이천우는 전라도에서 왜구를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로 기록돼 있어요. 조선 초기에는 해안가와 내륙 곳곳에서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만큼, 이를 물리친 공로는 후손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이야기로 오래도록 전해졌을 거예요.
개국공신이라는 지위와 왜구 토벌이라는 실질적인 공로가 함께 있었기에, 후대에 영정을 모시고 기릴 만한 인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여요.
이천우의 후손은 담양에 머물다가 영광으로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고 해요. 그리고 이곳 영광에서 향내 유림들과 뜻을 함께해 영당을 세웠어요. 그렇게 세워진 영당에 1616년, 광해군 8년에 이천우의 영정을 봉안하면서 지금 묘장영당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후손이 다른 지역에서 영광으로 옮겨오고, 그 자리에서 다시 지역 유림과 함께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묘장영당은 한 집안의 이주와 정착, 그리고 지역과의 연결이 함께 담긴 공간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공식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조상의 초상, 즉 영정을 모시고 후손과 지역 유림이 함께 예를 갖추던 공간이에요. 단순히 한 집안의 사당을 넘어 향내 유림들이 함께 뜻을 모아 건립했다는 점에서, 묘장영당은 이천우 후손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 유림 사회가 함께 지켜온 공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건물 하나를 보더라도 그 안에 담긴 여러 사람의 뜻을 함께 떠올려보게 돼요.
후손과 유림이 함께 모신 자리, 40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지금에 닿았어요.
훼철과 중건, 굴곡진 시간을 지나
묘장영당도 조선후기의 시대 변화를 피해가지 못했어요. 공식 설명에 따르면 조선후기에 훼철을 겪었는데, 이후 강당은 본래의 제향 기능 대신 서당으로 쓰이며 명맥을 이어갔다고 해요. 사당으로서의 역할은 잠시 멈췄지만, 건물과 자리는 서당이라는 형태로 계속 지역 사람들과 함께했던 셈이에요.
훼철이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다른 쓰임으로나마 이어졌다는 점이 눈에 띄어요.
그렇게 서당으로 쓰이던 묘장영당은 1928년에 다시 세우자는 뜻이 모이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어요. 발의부터 실제 신실을 중건하기까지는 몇 해가 더 걸려, 1934년에 이르러서야 신실 중건이 마무리됐어요. 발의와 중건 사이에 놓인 몇 해의 시간만 보아도, 지역 유림들이 얼마나 공을 들여 이 공간을 되살렸는지 짐작해볼 수 있어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꾸준한 뜻 모음과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중건이었을 거예요.
훼철된 사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향내 유림들은 뜻을 모아 신실을 중건했고, 그 결과 지금의 묘장영당이 이천우의 영정을 다시 모실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어요. 훼철과 서당, 발의와 중건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은 묘장영당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예요.
지금 이 자리에 서서 건물을 바라볼 때, 그 안에 담긴 굴곡진 시간까지 함께 떠올려보시면 좋겠어요.
중심축으로 짜인 건축과 지금의 보존 상태
묘장영당은 건물 배치에서 중심축을 설정해 짜임새 있는 건축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는 구조라,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전체 배치를 자연스럽게 눈에 담을 수 있는 형태예요. 각 건물의 구조 역시 무리 없이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하니,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인상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중건 이후 지금까지 보존관리 및 상태도 양호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해요. 1934년 신실 중건 이후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사이 꾸준한 관리가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오래된 공간일수록 관리가 소홀해지기 쉬운데, 묘장영당은 중건 이후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만큼 지역에서 이 공간을 소중히 여기고 관리해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이천우 영정을 비롯해 영당과 관련된 자료도 잘 보존되어 오고 있다고 해요. 건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기록과 자료까지 함께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묘장영당은 건축물로서의 가치와 함께 자료로서의 가치도 함께 지니고 있는 셈이에요. 방문하실 때 중심축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시면, 짜임새 있는 배치와 안정된 건물 구조를 더 잘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영광 묘량면, 찾아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것
묘장영당은 영광군 묘량면 동삼로1길에 자리하고 있어요. 영광군은 전라남도에 속한 고장으로, 묘량면은 그 안에서도 내륙 쪽에 위치한 면 단위 지역이에요. 큰 도로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일 수 있으니, 방문 전에 지도 애플리케이션으로 정확한 위치를 한 번 확인해두시는 걸 추천해요.
초행길이라면 여유를 두고 출발하시는 게 마음 편할 거예요.
이용 시간은 상시 개방이고 쉬는 날도 연중무휴라, 특정 요일이나 시간에 맞춰 일정을 짤 필요 없이 비교적 여유롭게 방문 계획을 세울 수 있어요. 주차도 가능하다고 안내돼 있으니 자동차로 이동하시는 분들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거예요. 다만 유모차 대여와 신용카드 이용은 되지 않는다고 하니, 이 부분은 미리 참고해서 준비해두시면 좋아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문의처로 전화해 미리 확인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향내 유림들이 세우고 다시 일으켜 세운 공간인 만큼, 건물 하나하나를 천천히 살펴보면서 그 안에 담긴 시간의 흐름을 느껴보시는 것도 이곳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거예요. 근처 묘량면 일대를 함께 둘러보는 일정으로 여유 있게 계획해보시는 것도 좋겠어요.
40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온 이천우의 영정 앞에 서면, 묘량면의 조용한 하루가 더 특별하게 느껴질 거예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