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선생을 모시고 세월을 품은 이흥서원
진주강씨 다섯 선생을 기리며 모현당의 중수 역사를 품은 서원

전남 영광군 영광읍 영광로7길에 자리한 이흥서원은 진주강씨 강석덕, 강희안, 강희맹, 강귀손, 강학손 다섯 선생을 봉안하고 제향하는 서원이에요. 경내에는 이흥사, 경앙문, 모현당, 숭의문, 팔룡당 같은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서원이 오랜 시간 지켜온 역할을 짐작해볼 수 있어요. 상시 개방되고 연중무휴로 운영되니, 영광을 둘러보다 시간을 내서 들러보기에도 부담이 없는 곳이에요.
다섯 선생을 모신 서원
서원이라는 공간은 조선시대 지방 사림들이 세워 선현을 기리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제향과 강학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함께 품고 있었다는 점이 서원의 오랜 특징인데, 이흥서원 역시 다섯 선생을 봉안하고 제향해온 공간으로 이런 성격을 이어오고 있어요. 그래서 이흥서원을 둘러볼 때는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지어진 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더 의미 있게 다가올 거예요.
이흥서원이 봉안하고 제향하는 인물은 진주강씨 집안의 강석덕, 강희안, 강희맹, 강귀손, 강학손 다섯 선생이에요. 한 가문의 여러 세대에 걸친 인물들을 함께 모셨다는 점에서, 이 서원이 진주강씨 집안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공간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다섯 분의 이름을 하나씩 새겨보면서 걷다 보면, 이 자리가 오랫동안 후손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자연스럽게 떠올려보게 돼요.
이흥서원은 영광군 영광읍 영광로7길에 자리하고 있어서, 영광읍 일대를 돌아보는 일정에 함께 넣기 좋은 위치예요. 정확한 위치나 찾아가는 길이 궁금하다면 영광군청 문화유산팀에 문의해보는 게 가장 정확해요. 방문 전에 한 번 연락해두면 헷갈리지 않고 서원을 찾아갈 수 있을 거예요.
모현당, 배움과 회합이 오간 강당
이흥서원 경내에서 특히 눈여겨볼 건물은 강당으로 쓰인 모현당이에요. 모현당은 유림들이 모여 회합을 갖고 학문을 강론하던 자리이면서, 동시에 숙소로도 사용되어온 다목적 공간이었어요. 하나의 건물이 배움과 만남, 머묾이라는 여러 역할을 함께 품고 있었다는 점에서, 서원 안에서도 중심이 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현당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처음부터 지금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에요. 원래는 정조 24년, 그러니까 1800년에 이흥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가, 이후 여러 차례 손을 보면서 지금의 모현당으로 이어져 왔어요. 이름이 바뀌고 모습이 달라지는 과정 자체가 이 건물이 겪어온 시간을 보여주는 셈이에요.
유림의 회합 장소이자 강학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은, 모현당이 단순히 보존된 옛 건물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드나들며 쓰던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는 걸 말해줘요. 서원을 둘러볼 때 모현당 앞에 서서 이런 쓰임새를 떠올려보면, 건물을 보는 느낌이 한층 다르게 다가올 거예요.
세 번의 중수를 거친 세월
모현당은 1800년 건립 이후로도 여러 차례 다시 지어지는 과정을 거쳤어요. 중수기와 상량문에 남은 기록을 보면, 1918년에 한 차례 중수가 이뤄졌고, 이후 1933년에는 건물을 증축하며 다시 손을 봤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요. 짧지 않은 간격을 두고 반복된 중수는, 그만큼 이 건물이 오래 쓰이며 관리되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여기서 끝이 아니라 1958년에 다시 한 번 중수가 이뤄졌어요. 1800년 건립부터 1958년 중수까지 이어진 시간을 헤아려보면, 모현당 한 채가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꽤 긴 시간을 관통해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중수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건물을 아끼고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렇게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모현당 곳곳에는 시대마다 다른 손길의 흔적이 남게 됐어요. 한 건물 안에 서로 다른 시기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는 점은, 이흥서원을 천천히 둘러볼 만한 이유이기도 해요. 급하게 지나치기보다는 건물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중수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한 채의 강당 안에, 조선 후기의 손길과 근현대의 시간이 함께 겹쳐 있어요.
근현대사의 현장이 된 이흥서원
이흥서원의 역사는 조선시대에서 멈추지 않고 근현대까지 이어졌어요. 1940년대 초부터는 이곳에 이흥학원이라는 교육기관이 개설되어 1951년까지 운영되었다고 해요. 서원이라는 전통적인 공간이 근대식 학원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이 자리가 시대에 따라 계속 배움의 역할을 이어왔다는 걸 보여줘요.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시기에는 이흥서원이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사용된 적도 있었어요. 조용히 제향과 강학이 이뤄지던 공간이 전쟁이라는 큰 사건 속에서 전혀 다른 용도로 쓰였다는 사실은, 이 서원이 겪어온 시간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다는 걸 짐작하게 해줘요.
모현당 건물 곳곳에서는 근현대적인 장식기법도 함께 확인된다고 해요. 조선시대 건립부터 근현대의 교육기관, 전쟁의 흔적까지 겹겹이 쌓인 시간 덕분에 이흥서원은 역사적으로도 건축적으로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이런 배경을 알고 나서 서원을 둘러보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디테일도 다시 한 번 눈여겨보게 될 거예요.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까지, 켜켜이 쌓인 시간을 한 자리에서 만나보고 싶다면 이흥서원에 들러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