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운계서원,
박제상을 제향하는 1824년의 조선 서원
꿈 속에서 깨어난 서원, 조선 유림들이 지킨 제향의 역사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에 자리 잡은 운계서원은 조선 후기의 작지만 의미 깊은 서원이에요. 1824년 영해도호부의 유림들이 함께 건립했으며, 박제상, 박세통, 박응천이라는 영해 박씨 가문의 인물들을 제향하고 있답니다. 2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지만, 이 서원이 지켜온 전통 제향의 이야기를 알면 이곳의 의미가 더욱 살아난다고 생각해요.
처음 터는 보곡, 꿈속 깨달음으로 현재 자리에 자리 잡다
운계서원의 발자취는 1818년부터 시작돼요. 그 시간, 박세통, 박홍무, 박감의 묘소가 있던 보곡(현재 위치에서 북쪽으로 약 2km)에 영해 박씨 후손들이 선조의 세덕을 기리기 위한 사당을 세웠대요. 이것이 운계서원의 모태가 되었답니다.
그 후 6년이 지난 1824년, 도내 유림들의 발의로 기존의 건물을 주사(주방)로 쓰고 마을의 가옥을 개조해 강당을 만든 후, 박제상, 박세통, 박응천 3인의 위패를 봉안했어요. 당시엔 '운계정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는 서원이 아닌 정사였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언제부터 운계서원이라고 불리게 되었을까요?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과 재건립의 시간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운계서원은 철폐되고 말았어요. 하지만 후손들의 끈기는 멈추지 않았어요. 19년 뒤인 1887년, 영해 박씨의 후손들이 이곳에 추원재라는 재실(祭室)을 지어 선조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이어갔답니다.
이후 약 100년의 세월이 흐르고, 1987년이 되어서야 현재의 자리에 사당과 봉송정을 갖춘 운계서원이 새로이 건립되었어요.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인 사당, 그리고 2칸 규모의 사각 정자인 봉송정이랍니다. 사당 옆에는 '삼대시중신도비'가 세워져 있어 세 분의 위대함을 기리고 있어요.
매년 음력 10월 7일에는 이곳에서 향사를 지내며, 오랫동안 이어진 제향의 전통을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깊어요.
200년을 견디어낸 영해 박씨의 제향 공간이에요. 조선 유림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곳을 찾는다면 한번 들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