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함께 기도하던 사찰,
의정부 회룡사
1300년을 지나온 사패산의 비구니 절, 역사와 전설이 깃든 곳
의정부 북쪽 사패산 산중, 북한산국립공원 경계에 자리한 회룡사는 1300년이 넘는 시간을 견디며 여전히 우리곁에 있습니다. 비구니 절인 이곳은 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깊은 역사 위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라는 역사 속 두 거인의 전설을 품고 있어요. 회룡역에서 가깝고 북한산을 걷다 우연히 만나는 길 위에, 사실과 전설이 어우러진 사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이어진 법성사, 어떻게 회룡사가 되었을까
회룡사의 역사는 681년 신라 신문왕 1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의상이 이곳을 창건했을 때, 절의 이름은 법성사였어요. 이후 936년 동진국사가 절을 중창했고, 1070년에는 혜거국사가 다시 한 번 삼창하면서 사찰을 지켜나갔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승려들의 손에 의해 유지되어온 법성사, 그 이름이 회룡사로 바뀌는 계기는 조선시대에 찾아옵니다.
회룡사라는 이름의 유래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1384년, 무학대사가 절을 중창할 때의 일입니다.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3년간 조선 건국의 성취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어요.
이성계는 절 안의 석굴암에서, 무학대사는 무학굴에서 각각 기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후 이성계가 동북병마사로 출정하게 되자, 무학대사는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지었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며 그의 영달을 축원했습니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을 다시 찾아와 절의 이름을 회룡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성계가 머물렀던 석굴암은 지금도 회룡사의 부속 암자로 남아 있는데, 나중에 독립운동가 김구가 상해 망명을 떠나기 전 은신처로 삼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해방 이후 김구가 이곳을 다시 찾아와 남긴 친필이 입구에 새겨져 있습니다.
두 번째 유래담은 1403년 조선 태종 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함흥차사의 고민으로 노여움을 풀지 못하던 태조가 한양으로 환궁하는 길에, 무학을 찾아 절로 향했다고 해요. 무학대사가 태조의 귀환을 축하하는 뜻에서 회란용가(回鸞龍駕)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회룡사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회룡사 입구 사거리에는 태조와 태종이 상봉했던 장소를 기념하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일화로 인해 회룡사가 자리한 이 마을은 전좌(殿坐) 마을이라 불리게 되었고, 회룡사의 주소지도 전좌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시련과 거듭난 중건의 역사
회룡사는 조선시대 내내 비구니들의 손에 의해 지켜져 왔습니다. 1630년에는 비구니 예순이 절을 중건했고, 1881년 최성이 중수를 거쳤으며, 1938년 비구니 순악이 다시 한 번 중수했습니다. 하지만 근현대의 격변 속에서 사찰도 피할 수 없는 시련을 맞이하게 됩니다.
6·25 전쟁 당시, 회룡사는 불에 타면서 극심한 손실을 입게 되었어요. 오래된 건축물과 소중한 유물들이 사라지면서, 1300년을 이어온 절이 그 역사의 대부분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 후 1954년, 비구니 도준이 회룡사를 중건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절을 다시 세우려는 의지는 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회룡사의 모습은 이렇게 재건되고 복구된 모습입니다.
전쟁으로 손상되기 전의 원래 모습을 완전히 되찾기는 어려웠지만, 사찰이 지켜져온 그 정신만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숨결을 간직한 문화재들
회룡사 경내에는 회룡사의 오래된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재들이 남아 있습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회룡사오층석탑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같은 지정문화재인 회룡사석조는 15세기 제작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6·25 전쟁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남아, 절의 역사를 물질적으로 증명하는 물건들이에요.
경기도 문화재자료로도 지정된 의정부회룡사신중도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1887년 상국 신씨 성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위해 발원해 제작한 것입니다. 남양주 흥국사의 불화승 경성당 응석의 작품으로, 종교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입니다.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이러한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회룡사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조가 머물렀던 석굴암은 후대에 독립운동가 김구의 은신처가 되었습니다. 사찰이 품은 역사는 사찰의 시대만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1300년의 시간 속에서 태조와 무학의 전설을 만나고, 전쟁의 아픔과 재생의 역사를 함께 품은 회룡사. 의정부의 역사가 여기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