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웹진서산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3분

관아 건물 1871년 중건에서 1978년 복원까지,
서산관아문 및 외동헌

서산읍성 안에 있던 관청 건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온 흔적

관아 건물 1871년 중건에서 1978년 복원까지, 서산관아문 및 외동헌
서산 현지 사진

서산시 관아문길에 서 있는 서산관아문 및 외동헌은 조선시대 서산의 행정 중심이었던 서산읍성 안에 있던 건물들입니다. 단순한 옛 건축물이 아니라, 한 지역의 역사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보여주는 건물들이에요. 특히 1871년에 당시 서산 군수였던 오병선이 다시 지었고, 1978~1979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기거나 복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19세기 중반과 20세기 후반이 어떻게 만나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1871년, 군수 오병선의 중건

관아문의 정면, '서령군문' 현판이 보인다
관아문의 정면, '서령군문' 현판이 보인다

서산관아문 및 외동헌의 이야기는 18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서산 군수였던 오병선이 이 건물들을 다시 지었다는 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기록이에요. 조선시대 지방 행정이 이루어지던 읍성 안에서 이런 중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관아 건물이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관아문은 관청의 정문으로, 외동헌은 군수가 공적인 일들을 처리하던 공간이었거든요.

관아문의 2층 구조, 세부를 보다

1층 기둥과 대문 구조의 세부
1층 기둥과 대문 구조의 세부

관아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문루 건물입니다. 1층은 돌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만들었고, 그 기둥 사이마다 대문을 달았어요. 2층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는데, 이 2층 구조는 단순한 출입 통로가 아니라 높은 곳에서 읍성을 감시하고 관리하던 기능을 보여줍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라고 불리는 양쪽 옆이 사다리꼴인 형태로, 조선시대 관청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에요. 현재 관아문의 정면에는 '서령군문(瑞寧軍門)'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건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려주는 글자판입니다.

외동헌, 공적인 일을 처리하던 공간

외동헌은 관아문과 함께 서산읍성 안에 있던 관청 건물로,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입니다. 이 건물은 군수를 포함한 관리들이 실제 행정 업무를 처리하던 공간이었어요. 특히 주목할 점은 주위 4면에 반 칸씩 퇴칸(건물 주변을 감싸는 추가 공간)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쪽 옆면에는 다른 부분보다 높게 만든 돌 모양의 주초(기둥을 받치는 기초)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원래는 이 부분이 누마루(기둥 위에 마루를 깔아 높게 만든 구조)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외동헌의 정면에 걸린 '서령관(瑞寧館)'이라는 현판도 이 건물의 위상을 말해줍니다.

1978~1979년, 이전과 복원

오병선 군수가 1871년에 중건한 이 건물들이 100년 이상을 그 자리에서 역사의 변화를 견뎌냈습니다. 그러다가 1978~1979년에 큰 변화가 생겼어요. 외동헌은 서산시청 본관이 들어서게 되는 자리에서 지금의 관아문길로 옮겨졌고, 관아문도 같은 시기에 해체했다가 복원되었습니다.

근현대라는 시간이 관청 건물의 자리마저 바꿔놓은 것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이전되고 복원된 건물들은 오늘날 서산의 문화유산으로 남아 방문객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도시전설 팁
서산관아문 및 외동헌의 정확한 개방 시간, 입장 정보, 내부 관람 여부 등은 방문 전에 서산시청 문화재 담당 부서나 관광 안내소에 확인해보세요. 건물의 세부 구조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전문 해설사 안내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871년 중건에서 1978년 복원까지, 조선의 관청 건물이 근현대를 거치며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는 경험. 서산의 이야기를 계속해봅니다.
#서산관아문#외동헌#서산읍성#조선시대건축#문화유산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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