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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Light진주 웹진 · 진주 인사이드 · 2026-09-27 · 읽는 시간 7분

남강 벼랑 위에 솟은 진주 촉석루 이야기

고려 때 세워져 오늘까지 이어온 진주 촉석루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남강 벼랑 위에 솟은 진주 촉석루 이야기
진주 현지 사진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남강이 흐르는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솟아 있는 누각이 촉석루예요.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이라 불릴 만큼 오랜 세월 진주를 대표해온 곳이라, 진주에 들르신다면 한 번쯤 남강가로 걸음을 옮겨보시길 권해드려요. 고려 시대에 세워져 지금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온 곳이기도 해서, 건물 하나에 얽힌 이야기도 만만치 않게 많아요.

지금부터 촉석루가 어떤 곳이고 어떻게 둘러보면 좋을지 하나씩 같이 살펴볼게요.

남강 벼랑 위, 진주성의 남장대

촉석루
촉석루

촉석루는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남강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솟아 있는 누각이에요. 강을 따라 난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자리에 서 있어서, 진주성 쪽에서 접근하시든 남강 강변에서 접근하시든 멀리서부터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올 거예요. 진주성 안에서도 남쪽을 지키는 남장대로 세워진 건물인 만큼, 성 전체를 조망하기에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남강을 사이에 두고 도심 쪽에서 바라보는 촉석루의 모습도 놓치지 말고 함께 담아보시면 좋아요.

촉석루는 진주성의 남장대로 쓰였던 만큼 장원루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어요. 남장대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처음에는 군사적인 목적을 가진 건물로 세워졌고, 성의 방어와 지휘에 유리한 남강가 벼랑 위 자리가 그래서 선택되었던 것으로 보여요. 이름 하나에도 이곳이 품고 있던 역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라, 촉석루를 둘러보실 때 이런 이름의 유래도 함께 떠올려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안내판이나 표지석이 있다면 함께 읽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1241고려 고종 28년, 촉석루가 처음 세워진 해

공식 자료에서는 촉석루를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남강을 끼고 있는 벼랑 위 자리와 오랜 세월 이어온 역사가 더해지면서 이런 평가를 받아온 것으로 보여요. 진주를 처음 찾으신다면 진주성 남쪽 입구 쪽에서부터 남강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오시면서 촉석루와 강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함께 만나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성 안의 다른 볼거리와 함께 동선을 짜서 둘러보시면 시간을 알차게 쓰실 수 있어요.

고려 때부터 이어져 온 오랜 역사

촉석루
촉석루

촉석루는 고려 고종 28년, 그러니까 1241년에 처음 세워진 누각이에요. 이후 오랜 세월을 거치며 무려 8차례에 걸쳐 다시 짓고 보수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해요. 하나의 건물이 이렇게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쳤다는 사실만 봐도 촉석루가 진주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장소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어요.

8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셈이니, 그만큼 진주의 굵직한 역사를 곁에서 지켜본 건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촉석루도 6. 25 전쟁의 아픔을 피해가지는 못했어요. 전쟁 중에 촉석루가 불에 타 사라지는 일을 겪었는데, 이때 진주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힘을 모았다는 점이 인상 깊어요.

시민들은 진주 고적 보존회를 만들어 촉석루를 다시 세우는 일에 뜻을 모았다고 해요. 관에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손으로 다시 세워졌다는 점이 촉석루를 더 각별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이에요.

그렇게 시민들의 힘으로 복원된 촉석루가 바로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1960년의 모습이에요. 여러 차례의 중건과 전쟁으로 인한 소실, 그리고 시민들에 의한 복원까지, 촉석루 한 채에는 진주의 굴곡진 역사가 그대로 겹겹이 쌓여 있는 셈이에요. 지금 남강가에 서 있는 촉석루를 마주하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함께 떠올려보시면 훨씬 특별하게 다가올 거예요.

건물을 둘러보실 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 역사를 떠올려보시는 것만으로도 촉석루가 다르게 보이실 거예요.

지휘본부에서 고시장까지, 촉석루의 두 얼굴

촉석루
촉석루

촉석루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로 쓰였어요. 남장대라는 이름처럼 성의 남쪽을 지키면서 동시에 전체 상황을 살피고 지휘를 내리는 중심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여요. 벼랑 위라는 자리 덕분에 남강과 성 주변을 두루 살피기에도 유리했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어요.

지금 촉석루에 올라 남강 쪽을 내려다보시면 그 시야가 어떠했을지 어느 정도 가늠해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전쟁의 지휘소였다가, 평화로운 시절엔 시험장이 되었던 자리

반대로 평화로운 시절에는 향시, 그러니까 초시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쓰였다고 해요. 전쟁 때는 지휘본부였다가 평화로운 시기에는 인재를 가려 뽑는 시험장이 되었다는 점이 촉석루가 가진 독특한 이력이에요. 하나의 공간이 시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와요.

전쟁과 평화, 두 시기 모두에서 진주에 꼭 필요한 공간이었던 셈이에요.

이렇게 촉석루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지휘본부와 고시장이라는 두 얼굴을 오가며 쓰여왔어요. 지금은 두 역할 모두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촉석루 곳곳에 남아 있는 셈이에요. 남강가에 서서 촉석루를 바라보실 때 이런 쓰임의 변화도 함께 떠올려보시면 좋겠어요.

같은 자리를 두고도 시대마다 다른 이야기가 쌓여왔다는 게 촉석루를 둘러보는 재미 중 하나예요.

건축에 담긴 이야기와 가을 유등축제

촉석루
촉석루

지금의 촉석루는 팔작지붕에 다락루 형태를 갖춘 건물이에요. 누각 밑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은 창원의 촉석산에서 채석해 왔고, 건물에 쓰인 목재는 멀리 강원도 오대산에서 가져왔다고 해요. 진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돌과 나무가 한데 모여 지금의 촉석루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 부분이에요.

가까이 다가가서 돌기둥과 지붕의 결구를 찬찬히 살펴보시면 옛 건축 방식을 조금이나마 느껴보실 수 있어요.

체크리스트
팔작지붕에 다락루 형태를 갖춘 건물 외관
창원 촉석산에서 채석해 온 돌기둥
강원도 오대산에서 가져온 목재
누각에 걸린 4개의 현판과 시인 묵객들의 시판

촉석루 누각 안에는 4개의 현판과 함께 시인 묵객들이 남긴 시판이 걸려 있어요. 오랜 세월 이곳을 찾았던 문인들이 남긴 흔적이 그대로 걸려 있는 셈이라, 촉석루 안쪽을 둘러보실 때 이 현판과 시판도 함께 찬찬히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건물의 외형뿐 아니라 그 안에 남은 기록들까지 살펴보시면 촉석루를 더 깊이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자로 쓰인 현판이 많으니 뜻이 궁금하시면 안내 자료를 함께 참고하시는 것도 좋아요.

매년 가을이 되면 진주성에서는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열려요. 남강을 따라 화려한 등불이 밝혀지는 이 축제 기간에는 촉석루 주변 풍경도 한층 특별해진다고 해요. 가을에 진주를 찾으실 계획이시라면 유등축제 일정을 미리 확인해보시고, 촉석루와 남강이 어우러지는 야경도 함께 즐겨보시길 추천드려요.

축제 기간에는 평소보다 사람이 많이 몰릴 수 있으니 여유 있게 시간을 잡고 움직이시는 게 좋아요.

Cityzine 팁
촉석루는 09:00부터 18:00까지 둘러보실 수 있고, 궁금한 점은 촉석루 관광안내소(055-749-5171)로 문의하시면 돼요. 주차는 촉석문 앞 주차장(소형 전용), 공북문 주차장(대형 17면, 소형 15면), 보건소 주차장(대형 9면, 소형 35면) 중 상황에 맞게 이용하시면 편해요.
남강을 따라 걷다 촉석루 앞에 서면, 진주가 품어온 오랜 이야기가 한눈에 들어올 거예요 🙂
글 · Cityzine 편집부 · 2026-09-27 발행링크 복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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