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웹진›울돌목 지나 만나는 벽파진 이충무공 전첩비
Spot Light진도 웹진 · 진도 인사이드 · 2026-09-30 · 읽는 시간 7분

울돌목 지나 만나는 벽파진 이충무공 전첩비

정유재란 명량해전 승첩을 기리는 벽파진의 역사적인 자리

울돌목 지나 만나는 벽파진 이충무공 전첩비
진도 현지 사진

전남 진도군 고군면 벽파길에는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가 서 있어요.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고, 그 싸움에서 목숨을 바친 진도 출신 참전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기록해 놓은 자리예요. 벽파정 바로 위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그날의 승첩을 천천히 떠올려보기 좋은 곳이에요.

명량해전과 벽파진, 승첩을 새긴 이유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벽파진 전첩비는 정유재란 당시 이충무공이 거둔 가장 통쾌한 승리로 꼽히는 명량해전 승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어요. 공식 설명에는 이 승리를 두고 불가사의하게 거둔 승첩이라는 표현이 쓰여 있는데, 그만큼 당시 상황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혀요. 명량해전은 정유재란 중 벌어진 해전으로, 전남 진도와 해남 사이의 좁은 바닷길인 울돌목 일대에서 벌어진 싸움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그 승리의 의미를 지역 차원에서 오래 기억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바로 이 전첩비인 셈이에요.

전첩비는 승리 그 자체만 기리는 게 아니라, 그 싸움에서 순절한 진도 출신 참전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기록하고 있어요. 전쟁터에서 싸우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지역 차원에서 기억하고 기리려는 뜻이 담긴 비석인 셈이에요. 벽파진이라는 지명 자체가 이 전첩비와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해요.

그만큼 이곳은 승리의 기쁨과 함께 희생의 무게도 같이 담고 있는 자리라고 볼 수 있어요.

비석이 서 있는 위치도 눈여겨볼 만해요. 벽파정 위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서, 벽파정과 함께 둘러보면 이 일대가 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리였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거예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비문을 천천히 읽어보면, 그날의 승첩이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 더 실감나게 다가올 수 있어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이곳을 찾는 좋은 이유가 될 거예요.

비석에 새겨진 승첩의 이야기만큼이나, 이 비문을 누가 짓고 누가 글씨를 썼는지도 함께 눈여겨볼 만해요. 벽파진 전첩비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과 서예가의 손길이 함께 담겨 있다고 해요. 누가 이 비석을 정성껏 완성했는지 알고 나면 이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깊어질 수 있어요.

명량의 승첩과 그 자리를 지킨 이름들을 함께 새긴 비석이에요.

비문을 지은 이와 쓴 이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벽파진 전첩비가 왜 정성 들여 세운 기념물인지 한층 더 와닿을 거예요. 이제 그 이름들을 하나씩 짚어볼게요.

비문을 지은 이들, 이은상과 손재형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전첩비의 비문은 시인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진도 출신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이 썼다고 해요. 이은상은 여러 시와 글로 잘 알려진 문인이고, 손재형은 소전이라는 호로도 유명한 서예가로 알려져 있어요. 두 사람의 이름이 비석에 함께 새겨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전첩비가 단순한 표지석이 아니라 공들여 세운 기념물이라는 걸 짐작해볼 수 있어요.

승첩의 기록을 남기는 일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이들의 손길이 함께했다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와요.

특히 손재형이 진도 출신이라는 점이 눈에 띄어요. 진도와 인연이 깊은 서예가가 직접 글씨를 쓴 비석이니, 지역 사람들에게는 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비석 앞에 서서 글씨체를 천천히 살펴보는 것도 이곳을 둘러보는 소소한 즐거움이 될 수 있어요.

같은 진도 땅에서 나고 자란 이가 고향의 승첩을 글씨로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깊게 느껴져요.

비문의 내용과 글씨, 그리고 세워진 자리까지 하나하나 짚어보면, 벽파진 전첩비가 왜 진도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 중 하나로 꼽히는지 이해가 될 거예요. 시간을 넉넉히 잡고 천천히 둘러보면 좋은 이유이기도 해요. 비석 하나에 담긴 이야기치고는 꽤 많은 것들이 얽혀 있는 셈이니,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읽어보시길 추천해요.

벽파진 전첩비가 서 있는 이 언덕 아래로는 벽파진이라는 항구가 자리하고 있어요. 비석이 기리는 승첩의 무대가 됐던 이 항구가 예전에는 어떤 곳이었는지도 함께 살펴보면 좋아요. 지금의 모습만 보고 지나치기엔 이 항구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꽤 많거든요.

체크리스트
벽파정과 함께 둘러보기
고군면 벽파길 74 주소로 위치 확인하기
방문 전 이용정보 미리 확인하기
진도대교 개통 이전 항구였던 배경 함께 살펴보기

벽파진이 항구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고 나면, 지금 남아 있는 포구의 모습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풀어가 볼게요. 항구였던 시절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이곳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거예요.

항구였던 벽파진, 지금은 소규모 어항으로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벽파진은 원래 진도군과 해남군을 잇던 항구였어요. 울돌목이 진도와 육지를 잇는 가장 가까운 해협이긴 했지만, 조류 속도가 워낙 빨라서 항로로 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1984년 진도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벽파진이 진도와 해남을 오가는 가장 중요한 항구 역할을 했다고 전해져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리 하나로 간단히 오갈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걸 떠올리면 이 항구가 지녔던 무게가 다르게 느껴져요.

그뿐 아니라 벽파진은 진도와 제주도를 잇는 관문이기도 했고, 인근 해역을 지나는 여객선들이 거쳐가는 거점 항구이기도 했어요. 거점 항구였다는 걸 생각하면, 그만큼 오가는 배와 사람이 많았던 곳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어요. 진도 사람들에게는 육지와 제주를 잇는 생활의 통로 같은 곳이었을 거예요.

지금은 항구로서의 기능이 예전만큼은 아니고, 소규모 어항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요. 그렇지만 벽파정과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가 남아 있어서, 이곳이 지나온 시간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리로 기억하게 해주는 곳이기도 해요. 항구의 옛 모습을 상상하며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이곳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쇠퇴한 항구라기보다는, 역사를 품은 채 남아 있는 자리로 바라보면 더 의미 있게 다가올 거예요.

벽파정과 함께 둘러보는 진도 고군면

벽파진 전첩비는 벽파정 바로 위쪽에 있어서, 두 곳을 한 번에 둘러보기 좋아요. 벽파정에서 먼저 바다를 바라본 다음, 언덕 위 전첩비까지 천천히 걸어 올라가 보는 순서로 둘러보면 동선이 자연스러울 것 같아요. 진도군 고군면 벽파길에 자리하고 있으니, 진도 여행 동선을 짤 때 이 일대를 함께 넣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진도는 전남 서남해안에 자리한 섬으로, 진도대교를 통해 육지와 연결돼 있어요. 예전에는 벽파진 같은 항구를 통해 배로 오가야 했던 곳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다리로 편하게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어요. 벽파진 일대를 둘러보면서 이런 변화를 함께 떠올려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될 거예요.

고군면 일대에는 벽파진 말고도 역사와 관련된 자리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시간이 넉넉하다면 주변까지 함께 살펴보는 일정을 짜보는 것도 좋아요. 다만 구체적인 동선이나 함께 둘러볼 만한 곳은 방문 전에 따로 찾아보고 확인하는 걸 추천해요. 급하게 서두르기보다는, 벽파진의 역사를 천천히 곱씹으면서 둘러보는 편이 이곳과 더 잘 어울리는 방식일 것 같아요.

오래 남아 있는 역사의 자리들을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진도라는 섬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Cityzine 팁
이용정보나 찾아가는 길이 자세히 궁금하면 진도군 문화관광 안내전화 061-540-3077로 문의해보는 게 정확해요. 방문 전 전화로 한 번 확인하고 가면 헛걸음을 줄일 수 있어요.
바다를 내려다보며 그날의 승첩을 떠올려보는 시간, 벽파진에서 한번 가져보세요 🌊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진도 고군면#관광지#명량대첩#벽파진
글 · Cityzine 편집부 · 2026-09-30 발행링크 복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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