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회령진성,
조선 수군이 왜구를 막던 해안 요새
남해 해상의 평화를 지킨 만호진성의 역사

장흥군 회진면에 있는 회령진성은 조선 시대 해안 방어의 최전선이었던 만호진성이에요. 성종 21년(1490년) 4월에 축조된 이 진성은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는 수군진(水軍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어요.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이 요새는 지금도 그 당시의 위용을 담아내고 있어요.
오늘날엔 조용해 보이지만, 600년 전 이 자리는 바다를 누비며 나라를 지키는 수군들의 활발한 활동이 벌어졌던 곳이었답니다.
조선 초기부터 시작된 회령포진의 역사
회령진이 처음 설치된 정확한 시기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통해 조선 초기에 설진 됐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당시 회령포진은 전라좌도도만호진 여도의 관할 아래 있었고, 내예, 돌산, 축두, 녹도, 마두, 달량, 어란 등의 포진과 함께 중요한 해양 거점으로 기능했어요. 만호가 배치되었으며 중선 4척, 별선 4척, 군 472명, 뱃사공 4명이 주둔하던 전략적으로 중요한 장소였답니다.
초기에는 방어와 수색을 위해 수군첨절제사나 수군만호들이 항상 병선을 이끌고 해상을 왕래했어요. 병선이 머무르는 곳으로 지정된 포소를 영・진으로 삼았지만, 여기에는 주로 군량과 군기를 쌓아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사시에는 하번선군이 집결하는 장소로 기능했으며, 평상시에는 해상작전을 하는 병선의 기항지이자 보급기지의 역할을 수행했어요.
부정형 석성으로 구축된 해안 요새의 구조
회령포진성은 마을의 뒷산을 이용하여 축성한 부정형 성곽이에요. 현재는 연육이 되어 있는 덕도, 노력도, 대마도, 대・소대구도 등의 섬들이 외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성벽의 총 길이는 616미터이며, 동벽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축성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훼철된 상태예요.
다만 윤중 필 씨댁 부근에서 동문지의 유구만이 확인될 뿐이에요. 북벽은 현재 높이 2. 3미터에서 2.
5미터, 너비 1. 5미터에서 2미터의 규모로 150미터 길이의 돌로 쌓은 성과 220미터 길이의 흙과 돌로 새로 쌓은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가치
성종 9년(1478년)에는 어란과 달량, 마도와 회령포 사이에 보를 설치하는 논의가 있었을 정도로 이 지역의 해상 통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어요. 성종 15년(1484년)에는 여러 포구의 만호 첨사유진처에 대한 축성이 논의되었고, 결국 회령포진성은 600년가까이 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 양쪽을 모두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치에 세워진 이 요새는 한반도 해양 방어의 역사를 대변하는 중요한 유산이에요.
조선의 해군이 지켜낸 바다의 역사를 직접 만나보세요. 회령진성에서 600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