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방촌리 석장승,
고려 시대 성문을 수호하는 쌍의 석조형상
남・여 장승이 함께 서 있는 역사의 증언

장흥군 관산읍에서 방촌으로 넘어드는 국도 23호선 도로변에 서 있는 두 기의 석장승을 아시나요?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이 석장승들은 고려 시대부터 지금까지 700년 이상을 이 자리에서 지켜오고 있어요. 마주보며 서 있는 남・여 장승은 각각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면 당시 석조 기술과 미술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알 수 있답니다.
진서대장군과 미륵석불, 성문을 지키던 쌍의 수호자
서쪽에 위치한 장승은 '진서대장군'이라고 불러요. 명문에도 그렇게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반면 동쪽에 있는 장승은 '미륵석불'이라고 불리는데, 지역에 따라 '벅수'나 '돌부처', '여장승'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온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 곁에 있어온 존재라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두 석상 모두 각 면이 각을 이루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진서대장군은 더 간략하고 평면적인 조각인 반면, 미륵석불은 풍만하면서도 조각이 깊어요.
진서대장군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왕방울 눈이 이중선각으로 처리되어 있고, 주먹코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요. 입은 양옆 볼까지 찢어져 있는데 입술이 두껍고 입꼬리가 귀밑으로 치켜 올라가 있어 전체적으로 익살스럽게 웃는 형상이랍니다. 반면 미륵석불은 한 얼굴 반을 차지한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이 튀어나와 있고, 우뚝 솟은 주먹코가 남은 얼굴을 차지해 진서대장군과는 다른 무서운 인상을 주고 있어요.
고려 시대 회주목, 그 성문을 수호한 풍수의 지혜
이 석장승이 세워진 배경을 알면 더욱 흥미로워져요. 고려 원종 6년(1265년)에 장흥부가 회주목으로 승격되면서, 당시 치소인 방촌을 더욱 보강하고자 상령산성과 회주고성이 축성되었어요. 이 성의 서쪽이 풍수지리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읍성의 '보허진압(補虛鎭壓)', 즉 허한 곳을 보충하고 눌러주기 위해 이 두 석장승을 세운 것이라고 전해져요.
성문인 북문동의 동쪽과 서쪽에 배치된 이 석상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정성과 기원이 담긴 수호물이었던 셈이에요.
민속신앙과 생활문화가 담긴 귀중한 자료
방촌리 석장승은 제작연대, 기능, 형태, 명문 등을 종합하여 볼 때 민속신앙과 생활문화사와 관련된 매우 귀중한 학술적, 역사적 자료라고 평가받아요. 7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두 석상이 경험했을 바람과 비, 옛 사람들의 손길과 기도를 생각해보면, 단순한 돌의 형상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질 거예요. 방촌마을 주변에는 회주고성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고 하니, 함께 둘러보면 고려 시대의 역사를 더욱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려 시대의 돌을 만지며 700년의 역사를 느껴보세요. 장흥의 눈에 띄지 않지만 귀한 문화유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