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웹진›임실 신안서원, 아홉 유학자를 모신 자리
Spot Light임실 웹진 · 임실 인사이드 · 2026-09-25 · 읽는 시간 5분

임실 신안서원,
아홉 유학자를 모신 자리

1588년 세워져 철폐와 복원을 거듭하며 아홉 유학자를 모신 신안서원 이야기

임실 신안서원, 아홉 유학자를 모신 자리
임실 현지 사진

전북 임실군 임실읍 신안1길에 자리한 신안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지역 사림들이 세운 사설 교육 기관이에요.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처음 세워진 뒤로도 여러 차례 소실과 중건, 사액과 철폐, 복원을 거치며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어요.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하나씩 따라가 보면 신안서원이 왜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켜왔는지 조금 더 이해가 될 거예요.

서원이라는 공간, 신안서원의 출발점

신안서원
신안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등장한 사설 교육 기관이에요. 관청이 세운 향교와 달리 지역 사림, 그러니까 그 지역에서 학문을 닦아온 유학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곳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의 기능과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는 제향의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고 해요. 신안서원 역시 이런 서원 본연의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신안서원이 자리한 곳은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1길 8-19예요. 임실군은 전북특별자치도 안에 자리한 여러 고장 중 하나이고, 임실읍은 그 가운데서도 군청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모인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신안서원도 이 임실읍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주소에 담긴 '신안'이라는 이름은 뒤에서 살펴볼 사액과도 이어지는 이름이니 함께 기억해두면 신안서원의 역사를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관광지로 분류된 신안서원은 지역 사림이 세운 서원인 만큼 조선시대 지방 교육과 제향 문화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장소예요. 서원이 학문 연구와 제사라는 두 가지 역할을 함께 맡았다는 점을 떠올리며 둘러보면, 이곳이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지역 유학자들의 뜻이 모인 공간이라는 사실이 더 잘 다가올 거예요.

한호겸의 덕행을 기리며, 1588년의 창건

신안서원
신안서원

신안서원은 1588년, 조선 선조 21년에 세워졌어요. 한호겸이라는 인물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그의 제자가 서원을 세우고 위패를 모신 것이 신안서원의 시작이었다고 해요. 스승 사후 제자들이 서원을 세워 그 뜻과 행실을 기리는 일은 조선시대 유학자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인데, 신안서원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세워진 곳이에요.

처음 신안서원에는 이서와 한호겸, 두 분만 봉안되어 있었어요. 이후 시간이 흐르며 봉안된 인물의 수가 하나둘 늘어나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자세히 다루도록 할게요. 창건 당시 두 분만 모셨다는 사실에서, 신안서원에 봉안된 인물의 수가 세월이 흐르며 얼마나 늘어났는지 짐작해볼 수 있어요.

그런데 신안서원의 역사는 평탄하게만 흘러가지 않았어요.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신안서원도 화를 피하지 못하고 소실되고 말았거든요. 이후 오랫동안 서원의 터와 유지만 남아 있는 상태가 이어졌다고 하니, 전쟁이 지역의 교육 공간에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에요.

중건과 사액, 서원의 위상을 갖추다

소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1669년, 현종 10년에 이르러서야 신안서원은 중건되었어요. 1588년 창건 이후 여든 해가 넘도록 유지만 남아 있던 자리에 다시 건물이 들어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서원을 다시 세우려던 지역 사림들의 뜻이 얼마나 오래도록 이어졌는지 느껴져요. 한 번 무너진 자리를 다시 일으키기까지 걸린 그 긴 시간을 떠올리며 신안서원을 둘러보면 감회가 남다를 거예요.

1788년, 정조 12년에는 사림들의 결의에 따라 배향 인물이 크게 늘어났어요. 송경원, 한필성, 한명유, 송시태 네 분이 새롭게 추가되었고, 이어 김수와 강백진 두 분이 다시 추가되면서 신안서원에는 모두 9현이 배향되기에 이르렀어요.

9현신안서원에 배향된 유학자 수

처음 이서와 한호겸 두 분에서 시작해 여러 유학자들이 차례로 더해진 셈이니, 신안서원이 한 인물만을 기리는 곳이 아니라 여러 유학자의 뜻을 함께 담아온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1819년에는 또 한 번 중요한 변화가 있었는데, 함평의 자양서원에 있던 주자의 영정을 신안서원으로 옮겨와 주벽으로 봉안하고 '신안'이라는 이름으로 사액을 받아 정식 서원으로 승격되었어요. 유학의 근본이 되는 주자를 주벽으로 모시게 되면서 신안서원은 이름에 걸맞은 격을 갖추게 된 셈이에요.

철폐와 복원, 오늘의 신안서원까지

신안서원도 전국의 많은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철폐의 시기를 피해가지 못했어요. 1868년, 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에 따라 신안서원 역시 철폐되고 말았어요. 전국적으로 수많은 서원이 문을 닫아야 했던 그 시기의 흐름을 신안서원도 그대로 겪은 셈이에요.

무너져도 다시 세우려는 마음은 남는다

철폐 이후에도 제사의 명맥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어요. 1936년에는 단을 마련해 제사를 지내오기 시작했고, 이런 방식으로나마 신안서원이 모셔온 유학자들에 대한 제향이 이어졌다고 해요. 건물은 사라졌어도 그 뜻을 기리려는 마음만은 계속 이어져 온 셈이에요.

그리고 1958년 10월, 신안서원은 마침내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어요. 창건된 1588년부터 헤아리면 37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소실과 중건, 사액과 철폐, 그리고 복원까지 겪어온 셈이니, 신안서원 한 곳에 담긴 이야기가 결코 짧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임실을 찾는다면 이렇게 오랜 이야기를 품은 신안서원에 들러 그 역사를 직접 느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Cityzine 팁
신안서원을 둘러보기 전에는 임실군 문화관광 담당 부서(063-640-2344)로 미리 연락해 개방 여부나 찾아가는 길을 확인해보면 헛걸음 없이 다녀올 수 있어요.
소실되고 철폐되고도 결국 다시 세워진 신안서원, 그 끈질긴 이야기를 직접 걸으며 느껴보세요 🙂
글 · Cityzine 편집부 · 2026-09-25 발행링크 복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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