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용두리,
드문 장고형 고분을 만나는 곳
백제와 왜의 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6세기 무덤, 용두마을에 있어요

전남 해남군 삼산면 창리, 용두마을에는 6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고분이 하나 있어요. 바로 용두리 고분인데, 겉모습이 장고를 닮은 장고형분이라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로 꼽힌다고 해요.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발굴조사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교류와 생활을 짐작하게 해주는 흔적이 여럿 확인됐다고 해요.
지금부터 이 흔적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살펴볼게요.
용두마을에서 만나는 6세기 고분
용두리 고분은 해남군 삼산면 창리 용두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어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용두마을이라는 지명을 그대로 따서 용두리 고분이라 부른다고 해요. 조성 시기는 6세기 중반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시기는 백제를 비롯한 주변 지역 사이에 여러 교류가 이뤄지던 때이기도 해요.
찾아갈 때는 삼산면 창리, 그중에서도 용두마을이라는 지명을 함께 기억해두면 길을 헤매지 않을 수 있어요.
이 고분이 자세히 알려진 건 발굴조사를 거치면서였어요. 2008년 10월 7일부터 11월 25일까지, 약 50일 동안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정식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고 해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조사가 이뤄진 만큼, 고분의 구조와 규모, 그리고 안에서 나온 유물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확인됐다고 해요.
지금 우리가 용두리 고분의 정확한 크기와 형태, 출토 유물을 알 수 있는 것도 이때의 발굴조사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해남은 전남 서남부 끝자락에 자리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바닷길과 가까운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삼산면은 해남군에 속한 여러 면 가운데 하나이고, 창리와 용두마을도 이 삼산면 안에 자리하고 있어요. 이렇게 바다와 가까운 지역에 6세기 고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당시 이 일대가 여러 지역과 오가던 길목이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해줘요.
다음 장에서 살펴볼 장고형분이라는 독특한 형태도, 이런 지리적 위치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요.
작지만 특별한 장고형분
용두리 고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장고형분이라는 점이에요. 장고형분은 옆에서 봤을 때 국악기인 장구를 닮은 모양의 무덤을 말하는데, 한쪽은 둥글고 다른 한쪽은 네모난 형태가 이어져 있는 게 특징이라고 해요. 공식 자료에 따르면 용두리 고분은 장고형분치고는 작은 편에 속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형태의 고분 자체가 흔치 않아서 그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해요.
작다고 해서 가볍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흔치 않은 형태라는 점을 기억하고 둘러보면 좋을 것 같아요.
고분의 규모를 살펴보면, 분구 전체 길이는 40m, 둥근 부분인 원부의 지름은 23m, 높이는 5m라고 해요. 네모난 부분인 방부는 앞쪽 너비가 17m, 허리 부분 너비가 16m, 높이는 3. 5m로 기록돼 있어요.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가 남아 있는 건, 앞서 이야기한 발굴조사를 통해 정확하게 실측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다만 이 수치가 원래 모습 그대로는 아니라고 해요. 구릉 일대가 개간되면서 분구가 상당한 깊이로 깎여 나갔기 때문에, 원래 분구의 규모는 지금보다 1~2m 정도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그러니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은 원래 크기에서 조금 작아진 상태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눈앞의 고분을 보면서, 한때는 이보다 조금 더 크고 뚜렷한 형태였을 모습을 함께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어요.
백제와 왜의 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흔적
용두리 고분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부분은 이음돌의 존재예요. 겉모습이 장고형, 그러니까 전방후원형이라는 점과 함께 이런 이음돌이 확인된다는 점을 근거로, 백제와 왜 사이의 교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고 해요. 물론 이건 추정일 뿐 확정된 결론은 아니라서, 앞으로 연구가 더 이뤄지면서 조금씩 밝혀질 부분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작은 무덤 하나에, 바다 건너 교류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이런 형태의 고분은 우리나라 전체를 놓고 보면 흔하지 않은 편이라, 하나가 확인될 때마다 학계의 관심을 받는다고 해요. 용두리 고분 역시 장고형분치고는 작은 규모지만, 이 형태 자체가 드물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유적으로 꼽힌다고 해요. 고대사나 대외 교류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 고분을 계기로 관련 이야기를 함께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해남을 비롯한 서남해안 일대는 예로부터 바닷길을 통해 여러 지역과 오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널리 알려져 있어요. 용두리 고분에서 나타나는 이음돌 같은 흔적들은, 당시 이 지역이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바다 건너 다른 지역과도 연결돼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라고 볼 수 있어요. 작은 고분 하나를 통해 당시의 교류 양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는 점이, 용두리 고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이에요.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알고 나면 고분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질 수 있어요.
출토된 유물로 보는 당시 생활
발굴조사 과정에서는 고분의 형태 못지않게 다양한 유물도 함께 나왔어요. 토기류로는 뚜껑이 있는 접시인 개배와, 구멍이 뚫린 작은 항아리인 유공광구소호 등이 확인됐다고 해요. 이런 그릇들은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거나,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함께 묻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유물이라고 해요.
토기류 외에도 철기류가 함께 발견됐는데, 칼의 일부인 대도편, 화살촉인 철촉, 쇠로 만든 손칼 등이 있었다고 해요. 이렇게 토기와 철기가 함께 나왔다는 건, 당시 이 무덤의 주인이 어느 정도 위세를 갖춘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해주는 부분이에요.
이렇게 출토된 유물들은 발굴조사를 진행한 국립광주박물관 쪽에 관련 자료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현장에서 유물을 직접 보기는 어렵겠지만, 고분의 형태와 규모, 그리고 이런 유물 목록을 미리 알고 가면 훨씬 풍부하게 둘러볼 수 있을 거예요. 눈에 보이는 흙무덤 하나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용두리 고분을 통해 느껴볼 수 있어요.
작은 고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작지 않았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