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간 1만 5천 명이 일어선 함성,
월곶면민만세운동유적비
1919년 3·1운동의 현장, 월곶면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리다
월곶면민 만세운동 유적비는 김포시 월곶면에서 전개된 3·1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입니다. 현재 통진 휴게소에 위치한 이 유적비는 1984년 12월 29일에 제막되었으며, 2005년 5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어요. 기념비의 규모는 기단 높이 0.
66m, 비의 높이 1. 2m로, 결코 크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의 무게감은 깊습니다. 전국에서 세 번째, 경기도에서는 두 번째 규모의 만세운동이 바로 여기 김포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919년 3월, 김포를 뜨거웠던 날들
1919년 3월 22일부터 29일까지, 8일 동안 검단면, 양촌면, 고촌면, 하성면, 월곶면 등 김포 전역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집회 횟수는 총 15회, 참여 인원은 약 1만 5,000명에 가까웠어요. 이는 당시의 작은 군인 김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향한 열망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특히 월곶면 지역의 독립 만세운동은 김포 출신의 이살눔(본명 이경덕·1886~1948) 선생에 의해 1919년 3월 22일을 시작으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으며, 3월 29일 조강리와 갈산리 일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날의 함성, 그들의 이름
유적비가 세워져 있는 통진 휴게소는 원래 군하리 장터였어요. 바로 여기가 당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던 곳입니다. 3월 23일에는 양촌면 오라니 장터에서도 동시다발적인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양촌대곶면민 만세운동유적비가 별도로 세워졌습니다.
월곶면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의 주동자와 적극 가담자들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일부는 순국했어요. 그들의 이름과 함성이 이 유적비에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김포 여행 중에 이 기념비를 만나게 된다면, 시간을 두고 눈여겨보며 당시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1만 5천 명의 사람들이 일어선 그 날, 그들은 자유를 외쳤어요. 그 함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한 기념비 앞에 서면, 100년 전의 용기가 현재를 만진다고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