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 조헌 선생을 기리다,
우저서원의 375년 역사
서원철폐령도 견뎌낸 사당, 임진왜란의 의병 지도자를 추모하다

우저서원은 중봉 조헌의 생가가 있던 곳으로, 조헌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선 인조 26년(1648)에 세워졌어요. 숙종 1년(1675)에 '우저(牛渚)'라는 사액(임금님이 써주신 이름)을 받으면서 정식 서원이 되었습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이 자리를 지켰는데, 순조 34년(1834) 중건 이후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아 있었어요.
1973년부터 3년에 걸쳐 전면 보수가 이루어진 우저서원은 오늘날까지 조헌 선생의 유산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의 영웅, 조헌 선생의 삶
조헌은 김포에서 출생하여 명재상 율곡 이이의 문인으로 성장했어요. 명종 22년(1567)에 급제하여 많은 관직을 지내며 국가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영웅담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시작됩니다.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조헌 선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무려 1,700여 명의 의병을 모았고, 영규(靈圭) 승려의 승군(승려로 이루어진 군대)과 함께 청주성을 탈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왜군에 맞서 금산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아국의 피를 흘리며 순절했어요.
서원의 건축과 유물들
우저서원 내에는 사당, 강당, 동재, 서재, 내삼문 등의 건물이 남아있습니다. 사당 앞 우측에는 광해군 9년(1617)에 건립된 '조헌선생유허추모비(趙憲先生遺墟追慕碑)'와 비각이 있어요.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겹처마 맞배지붕입니다.
강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이에요. 중앙의 4칸 대청 좌우에 2칸씩 온돌방이 있으며, '麗澤堂(이택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각 건축 요소 하나하나가 조선시대의 건축 기법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에요.
이 자리에 선 조헌 선생은 학자이자 의병 지도자였어요. 서원 담장을 넘는 바람이 부는 날, 그 옛날의 충절과 용기가 현재까지 전해지는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