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적 몰아낸 공을 기린 정자,
거창 건계정
고려 말 국란의 위기를 넘긴 무공이 깃든 거창의 정자예요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거안로에 자리한 건계정은 거창 장씨 문중이 1905년에 세운 정자예요. 짧게 보면 계곡가에 놓인 정자 한 채이지만, 그 안에는 고려 말부터 이어진 한 집안의 이야기와 나라를 지킨 무공이 함께 새겨져 있어요. 건계정을 둘러보기 전에 이 사연을 알아두면, 정자 아래로 흐르는 물길과 숲이 훨씬 다르게 다가올 거예요.
귀화한 시조에서 아림군 두민까지
건계정을 세운 거창 장씨 문중의 시조는 평보 장종행이라는 인물이에요. 공식 설명에 따르면 그는 고려 충렬왕 때 중국에서 귀화해 이 땅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요. 한 집안이 다른 나라에서 건너와 뿌리를 내리고, 그 후손이 수백 년 뒤에 정자까지 세우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짧지 않은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건계정을 마주하기 전에 이 시조 이야기를 알아두면, 정자가 그저 풍경 좋은 건물이 아니라 한 집안의 역사책처럼 느껴질 거예요.
시조 장종행의 아들인 두민에 이르러 집안은 나라에 큰 공을 세우는 시기를 맞아요. 공민왕 때 홍건적이 침입해 개경까지 점령당하는 국가적 위기가 있었는데, 이때 두민이 군사를 지휘해 홍건적을 몰아내는 무훈을 세웠다고 전해요. 도읍이 적의 손에 넘어갔던 위태로운 시기에 이를 되찾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민의 무공이 집안을 넘어 나라 전체에 의미가 컸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공민왕은 이 공로를 인정해 두민을 아림군으로 봉했다고 해요. 아림은 거창의 옛 지명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 봉작은 두민과 그의 집안을 거창이라는 지역과 단단히 이어준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이후 후손들은 두민의 공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했고, 그 마음이 세월을 건너 1905년 건계정이라는 정자로 완성됐어요.
후손들이 마음을 담아 세운 정자
건계정은 1905년, 두민의 후손인 거창 장씨 문중이 조상의 공을 기리려고 세운 정자예요. 국란을 이겨낸 조상의 이야기를 후대에 전하려는 마음이 정자 하나로 남았다는 점에서, 건계정은 단순한 쉼터를 넘어 문중의 기념비 같은 자리라고 볼 수 있어요. 정자 앞에 서면 왜 이 자리를 골라 정자를 세웠을지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정자를 세운 자리는 건계정 계곡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이곳은 예로부터 역사, 지리, 군사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고 해요. 지형적으로 중요한 자리였던 만큼, 후손들이 조상의 무공을 기리는 정자를 세우기에도 뜻깊은 장소였을 거예요. 지금의 평화로운 풍경만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계곡이 한때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리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건계정을 보는 시선이 한층 깊어질 거예요.
지금은 요충지라는 옛 역할보다 고풍스러운 정자와 어우러진 풍경으로 더 많이 이야기되는 곳이에요. 거창을 떠올릴 때 건계정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자리로 자리 잡았다고 해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 계곡이 왜 그렇게 절경으로 이름났는지 조금 더 들여다볼게요.
고려 말의 국란을 넘긴 무공이, 지금은 정자 아래 굽이치는 물소리로 남아 있어요.
요충지에서 절경으로, 건계정 계곡
건계정 계곡은 앞서 말했듯 역사, 지리, 군사상의 요충지로 자리해온 곳이에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 역할은 달라졌지만, 계곡이 품고 있는 지형과 풍경만큼은 그대로 남아 지금의 절경을 이루고 있어요. 요충지였던 자리가 시간이 지나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니, 역사와 자연이 함께 쌓인 곳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의 건계정은 고풍스러운 정자와 맑은 물이 굽이도는 물길, 그리고 그 주변을 감싸는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으로 알려져 있어요. 거창 하면 건계정을 떠올릴 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니, 거창을 돌아보는 길이라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이유가 충분해요. 정자와 물길, 숲이 한자리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을 눈에 담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물길이 굽이도는 풍경은 계절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니, 방문하는 시기에 따라 건계정의 분위기를 다르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정자에 걸터앉아 물소리를 듣다 보면, 이 자리가 왜 옛사람들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왔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거예요.
시인 묵객이 발길을 멈춘 자리
건계정은 예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 자리로 알려져 있어요. 아름다운 정자와 계곡을 마주하면 글을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봐요. 옛사람들도 이 자리에 앉아 정자 아래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생각을 글로 남겼을 거예요.
실제로 건계정은 거창을 소재로 하는 글이나 문학 소재의 대상에서 으뜸이 되었던 곳이라고 해요. 한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적 소재로 꼽힌다는 건, 그만큼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풍경이라는 뜻일 거예요. 건계정을 둘러보면서 옛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여행이 한층 풍성해질 거예요.
지금 건계정을 찾는다면, 옛 시인 묵객들이 그랬듯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정자와 물길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어요. 사진으로 담는 것도 좋지만, 눈과 귀로 직접 풍경을 느껴보는 편이 이 자리의 매력을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일 거예요.
고려의 국란을 넘긴 무공이 정자 하나로 남아 거창을 지키고 있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