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신라 적성비,
진흥왕 때 영토 편입을 기념한 국보
높이 93cm의 비석에 새겨진 430자의 역사, 신라의 영토 확장 정책을 담다
단양 신라 적성비는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비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곳 적성을 점령한 후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에요. 높이 93센티미터, 폭 107센티미터, 두께 25센티미터로 1979년 5월 22일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정확한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삼국사기의 내용을 토대로 진흥왕 6~11년(545~550) 경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순수비가 아닌 척경비, 그 의미가 특별하다
단양 신라 적성비의 경우 진흥왕이 세운 다른 순수비와는 다르게 영토 편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에요. 순수비(왕이 직접 순행하며 민정을 살핀 기념으로 세우는 비)는 아니지만, 순수비의 정신을 담고 있는 척경비(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비의 윗부분 일부가 잘려나갔으나 대체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고 하네요.
글자에 담긴 신라의 역사와 인물들
국왕의 교시를 받은 고관 10명의 이름이 비에 나오는데, 이사부, 비치부, 무력 등 진흥왕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들이 주목된다고 해요. 새로운 관직 명인 대상등하간지(大象等下干支) 등은 학계의 관심거리이기도 하답니다. 글자 수는 총 430자에서 440자 내외로 보이며, 이 중 완전히 해석한 것이 288자라고 합니다.
음각으로 파낸 이 적성비는 예서체와 해서체 중간의 글씨로 서예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이 비의 발견으로 당시 신라의 영토 확장과 신라의 유력 인물, 정복지 포섭 정책, 당시의 관직, 관등, 율령 반포에 대한 중요한 사실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략적 요충지
적성 위에서 남한강이 잘 전망되므로, 이곳이 삼국 시대에는 요새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어요. 비석이 서 있는 이 자리에 선 역사인들은 남한강의 물길을 따라 흐르는 국토와 그들의 확장된 영역을 바라봤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 비석 앞에 서면, 1,400년 전의 신라 시대를 조금이라도 체감할 수 있을 거예요.
1,400년 전 신라의 발자국이 남은 곳. 비석 앞에 서면 역사의 무게가 느껴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