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웹진춘천 인사이드 · 2026-09-02 · 읽는 시간 7분

김청풍부원군묘역,
현종의 장인이 잠든 서면 산자락

경춘로 안쪽, 조선 왕실과 얽힌 이야기를 만났어요

김청풍부원군묘역, 현종의 장인이 잠든 서면 산자락
춘천 현지 사진

이번엔 춘천 서면 경춘로를 따라 조용한 산자락으로 향했어요. 도착한 곳은 김청풍부원군묘역, 조선 시대 한 인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에요.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알고 나면 이야기가 꽤 묵직한 곳이라 차분히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묘역의 주인은 누구일까

김청풍부원군묘역
김청풍부원군묘역

김청풍부원군묘역은 조선 18대 임금인 현종의 장인, 충익공 김우명의 묘역이에요. 영의정을 지낸 김육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딸이 현종의 왕비인 명성왕후가 되면서 왕의 장인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됐어요. '청풍부원군'이라는 이름도 왕비의 아버지에게 내려지는 봉작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조선 시대에는 왕비의 친정아버지에게 이런 식으로 특별한 작위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참고로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아요.

'부원군'이라는 칭호는 실질적인 영지나 병권을 가진 자리라기보다, 왕비의 친정을 예우하기 위해 내려지는 명예직에 가까웠다고 알려져 있어요. 다만 명예직이라 해도 가벼운 자리는 아니어서, 조정의 공식 서열에서도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니 왕실과 혼인으로 맺어진 집안이 누리던 위상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해볼 수 있어요.

김우명은 인조 20년인 1642년에 진사시에 합격하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고 전해져요. 이후 강릉 참봉, 세마, 영돈녕부사, 오위도총관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고 알려져 있어요. 특히 오위도총관은 궁궐 수비를 총괄하는 자리였다고 하니, 조정 안에서도 상당한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었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어요.

딸이 왕비가 되기 전부터 이미 관료로서 탄탄한 이력을 쌓아온 인물이었던 셈이에요.

1642년김우명이 진사시에 합격하며 관직에 오른 해

당대 최고 권력층과 연이 닿았던 인물이었던 만큼, 그의 죽음 이후 조정에서도 각별히 예우를 갖췄다고 전해져요. 부원군이라는 지위에 걸맞은 대접을 하기 위해 나라에서 직접 묘소 자리를 마련해 주려 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는데, 정작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연이 하나 얽혀 있어요.

명당에 얽힌 전설

김청풍부원군묘역
김청풍부원군묘역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정에서는 원래 강원특별자치도 춘성군 신동면 증리라는 곳에 묘소를 하사하려 했다고 해요. 시신을 배에 싣고 한강을 거슬러 옮기던 중, 지금의 묘역 앞을 흐르는 강에 이르렀을 때 배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 순간 돌풍이 불어 명정, 그러니까 죽은 사람의 품계와 관직·성씨를 적어 관 위에 덮는 다홍빛 깃발이 산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해요. 사람들이 그 명정을 찾아 산으로 올라가 보니, 그 자리가 다름 아닌 명당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원래 하사하려던 자리를 취소하고, 명정이 날아간 이 자리에 묘를 쓰게 됐다는 이야기예요.

이런 이야기 구조는 조선 시대 묘역 관련 설화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나요. 사람이 정하려던 자리보다 자연이 알려준 자리가 더 귀한 명당이었다는 서사는,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여겼던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해요. 후손들이 이 이야기를 오래도록 전해온 것 자체가, 이 묘역을 얼마나 소중히 여겨왔는지를 짐작하게 해줘요.

실제 지리적 사실을 검증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이야기가 대대로 전해 내려온다는 것 자체가 이 묘역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특별하게 여겨져 왔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산자락을 걸으며 이런 옛이야기를 함께 떠올려보면, 단순한 산책과는 또 다른 재미가 느껴질 거예요.

묘역이 자리한 서면 일대는 원래도 산과 강이 어우러진 지형이 많은 곳이라, 이런 명당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기 좋은 환경이었을 것 같기도 해요. 지금도 묘역 주변을 걸어보면 산세가 아늑하게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바람이 데려간 깃발이 명당을 알려줬다는 이야기, 그 산자락을 걸으며 한 번쯤 떠올려볼 만해요.

묘역에서 눈여겨볼 것들

이 묘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숙종의 친필로 쓰인 묘비예요. 숙종은 김우명의 외손자, 즉 명성왕후의 아들이었으니 외할아버지의 묘비를 직접 써준 셈이에요. 왕이 직접 글씨를 남긴 묘비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남다른 유물로 알려져 있어요.

묘역에는 신도비도 함께 세워져 있는데요, 신도비는 무덤 근처 길가에 세워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리는 비석을 말해요. 이 신도비의 글은 호조판서를 지낸 이민서가 짓고, 글씨는 윤심이 썼으며, 전서는 소설 구운몽의 작가로 잘 알려진 서포 김만중이 맡았다고 전해져요. 한 비석에 이렇게 여러 명필과 문장가의 손길이 함께 들어갔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에요.

그 옆으로는 망주석과 문인석 한 쌍, 석등이 순서대로 배치돼 있어요. 이런 석물들은 조선 시대 사대부 묘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이지만, 이 묘역만의 특별한 점은 따로 있어요. 강원 지역 안에서 왕릉이 아닌 일반 묘소에는 보통 담장을 두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묘역은 유일하게 둥근돌, 즉 월석을 박아 만든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요.

체크리스트
숙종 친필로 쓰인 묘비 확인하기
이민서·윤심·김만중이 함께 만든 신도비 살펴보기
망주석과 문인석, 석등 배치 둘러보기
강원 유일이라는 월석 담장 자세히 보기

여러 인물의 손길이 모인 이유

이 묘역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히 한 사람의 무덤이어서가 아니라, 여러 인물의 손길이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이에요. 왕이 직접 쓴 묘비, 당대 문장가와 명필이 함께 만든 신도비, 그리고 후손들이 지켜온 독특한 담장까지, 한 공간 안에 이렇게 다양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특히 신도비에 이름을 남긴 이민서, 윤심, 김만중은 모두 당대를 대표하던 문인이자 관료였어요. 이들이 한 비석 작업에 함께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김우명이라는 인물이 당시 사대부 사회에서 얼마나 폭넓은 관계망을 가지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어요. 묘역 하나를 통해 조선 후기 정치사와 문예사가 어떻게 맞닿아 있었는지를 함께 읽어낼 수 있는 셈이에요.

서면 일대, 다른 곳과 함께 둘러보면

하나하나 짚어가며 둘러보면, 짧은 산책 코스처럼 보이는 이 묘역이 사실은 조선 시대 정치사와 예술사가 함께 응축된 공간이라는 걸 실감하게 돼요. 앞서 서면 자락에서 소개해드린 강원 경찰충혼탑과 강원숲체험장도 이 묘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세 곳 모두 서면이라는 같은 행정구역 안에 있는 만큼, 하루 일정을 짤 때 함께 묶어서 돌아보기 좋은 동선이 될 수 있어요.

역사적인 이야기가 남은 묘역, 순직 경찰관을 기리는 추모 공간, 몸으로 체험하는 숲까지 성격이 서로 다른 세 곳을 하루에 둘러보면, 춘천 서면이라는 지역을 훨씬 입체적으로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조용한 걸음이 필요한 곳부터 활동적인 체험이 필요한 곳까지, 완급을 조절하며 코스를 짜보시길 권해요.

묘역은 산자락에 자리한 만큼 걷기 편한 신발을 준비하시는 게 좋아요. 계단이나 경사진 길이 있을 수 있으니, 어르신이나 아이와 함께라면 천천히 속도를 맞춰 걸으시길 권해요. 조용한 분위기의 장소인 만큼, 큰 소리로 떠들기보다는 차분하게 둘러보는 편이 이곳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려요.

서면을 벗어나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면,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소양강댐이나 878m 높이의 용화산 자락에 자리한 국립 용화산자연휴양림도 함께 만나볼 수 있어요. 조용한 역사 유적에서 시작해 거대한 인공호수, 그리고 산악 액티비티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넓혀보면, 춘천이라는 도시가 가진 스펙트럼을 한층 폭넓게 경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

도시전설 팁
정확한 개방 시간이나 이용 안내는 따로 확인되지 않았어요. 산자락에 자리한 묘역인 만큼 방문 전 날씨와 노면 상태를 함께 살펴보고 움직이시길 권해요.
왕실과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음엔 이 근처 산과 물도 함께 살펴보고 싶어졌어요.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2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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