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성지,
조선 수군이 지키던 부산의 옛 진지
감만동에서 수영동까지, 좌수영이 옮겨온 사연을 따라가봤어요

부산 수영구 수영동을 걷다 보면 조선시대 수군의 흔적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경상좌수영성지예요. 지금은 성벽 일부와 문터만 남아 있지만, 한때는 동남해안을 지키던 수군의 본영이 자리했던 곳이라고 해서 제가 자료를 찾아보며 하나씩 정리해봤어요. 왜구를 막기 위해 세워진 이 진지가 어떻게 지금의 수영동까지 옮겨오게 됐는지 함께 따라가봐요.
왜구를 막기 위해 세운 조선 수군의 본영
경상좌수영성지는 경상도 옛 수군의 본영이 있던 자리예요. 좌수영은 조선시대에 동남해안을 관할했던 군영으로, 예로부터 남쪽 지방이 지리적인 이유로 왜구의 침략을 자주 받아왔기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해요. 왜구를 토벌하고 남쪽 바다를 지키기 위해 부산에는 경상좌수영을, 통영에는 경상우수영을 세워 두 곳이 함께 남쪽의 방위를 책임졌다고 해요.
좌수영과 우수영은 각각 동남해안과 서남해안을 나누어 관할했는데, 이렇게 좌우로 수군 진영을 나눠 배치하는 방식은 조선시대 해안 방어의 대표적인 체계로 알려져 있어요. 한 곳에 병력을 몰아두는 대신 지역을 나눠 책임을 맡기는 방식이었던 만큼, 경상좌수영이 담당한 동남해안 일대에서 부산이 차지하는 위치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어요.
원래 좌수영은 지금의 남구 감만동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태종 때 울산 개운포로 한 차례 옮겨졌다가 임진왜란 직전에 다시 지금의 수영동으로 옮겨졌다고 해요. 감만동에서 개운포로, 다시 수영동으로 이어지는 이전 과정만 봐도, 당시 조정이 남해안 방어 체계를 얼마나 신중하게 고민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특히 임진왜란 직전이라는 시기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는 점은, 왜구의 위협이 그만큼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지만
경상좌수영성의 정확한 축조연대는 지금까지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요. 다만 1692년에 성을 개축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어서, 적어도 그 이전부터 이 자리에 성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어요. 정확한 시작점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만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방어시설로 자리 잡아온 곳이라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개의 문과 시각을 알리는 북소리
좌수영성의 동, 서, 남, 북에는 각각 영일문, 호소문, 주작문, 공진문이라는 이름의 문이 있었다고 해요. 방위마다 이름을 달리해 문을 세웠다는 점에서, 성의 규모와 체계가 상당히 갖춰져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이 문들은 아무 때나 여닫힌 게 아니라, 일정한 시각에 폐문루와 관해루에 달아둔 북을 울려서 여닫았다고 전해져요.
지금이야 시계와 알림으로 시각을 확인하지만, 당시에는 북소리 하나가 성문을 여닫는 신호이자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기준이었을 거예요. 그 북소리를 듣고 성문 안팎의 사람들이 움직였을 모습을 상상해보면, 좌수영성이 단순한 방어시설을 넘어 사람들의 일상까지 함께 움직이던 공간이었다는 게 느껴져요.
우물과 배수구까지 갖춘 치밀한 방어시설
좌수영성에는 문과 성벽 외에도 3개의 우물과 4개의 배수구가 마련돼 있었고, 옹성과 치성, 보루 같은 방어시설도 함께 갖춰져 있었다고 해요.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문 앞을 둥글게 둘러쌓은 작은 성을, 치성은 성벽 일부를 밖으로 튀어나오게 쌓아 적을 옆에서 공격할 수 있게 만든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우물까지 성 안에 갖췄다는 건, 오랜 농성전에도 대비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어요.
조선시대 읍성이나 진영에는 이렇게 우물과 배수시설을 함께 갖춘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성이 단순히 적을 막는 담장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생활하고 버텨야 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에요. 좌수영성 역시 문루와 성벽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기반시설까지 두루 갖춘, 계획적으로 설계된 진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북소리로 여닫히던 성문, 우물까지 갖춘 방어시설 - 경상좌수영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마을이었어요.
지금 남아 있는 흔적들
경상좌수영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이 파손됐다고 해요.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곳곳의 읍성과 진성이 도로를 내거나 시가지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헐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경상좌수영성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대부분의 구조물을 잃은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지금은 예전 성벽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돌 터와 홍예문, 배수구, 그리고 성의 존재를 알려주는 남문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해요.
온전한 성곽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흔적만으로도 이곳이 한때 얼마나 치밀하게 갖춰진 방어시설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어요.
경상좌수영성지는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 수영동에 자리하고 있어요. 남아 있는 남문과 홍예문, 돌 터를 하나씩 짚어가며 걷다 보면, 수영동이라는 지명 자체가 이 진영의 역사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지실 거예요. 수영동 일대를 걸으며 조선 수군이 지키던 옛 진지의 흔적을 천천히 찾아보시길 바라요.
조선 수군이 남쪽 바다를 지키던 옛 진지예요. 수영동을 지나신다면 남아 있는 흔적을 천천히 찾아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