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용산서원,
의병장 박광전의 충절을 기리다
72세 나이로도 나라를 지킨 죽천의 학덕과 충의가 살아 숨 쉬는 서원

보성군 미력면 용산서원은 죽천 박광전 선생의 학덕과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입니다. 1868년 철폐되었다가 1984년 복원된 이곳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나라의 위기 속에서 나이를 초월해 의병을 일으킨 한 유학자의 면모를 오늘에 전하고 있어요. 방문하면 선생의 우국충정과 학문의 깊이를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퇴계의 제자로 성장한 유학자
죽천 박광전 선생은 조선 중종 21년인 1526년에 조성면 용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이퇴계의 문인이 되어 그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결국 당대의 대유학자로 인정받게 되었어요. 심지어 광해군의 스승 역할까지 하며 사상의 영역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선생의 진정한 위대함은 학문만이 아닙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선생은 격문을 띄우고 자신의 문인들과 함께 의병을 모집해 전라좌의병을 일으켰어요. 전란 극복을 위해 백성들을 위무하고, 흩어진 주민들을 모아 농사를 짓게 함으로써 민생 안정을 위해 직접 나섰습니다.
나이를 초월한 충정, 칠순의 격전
특히 주목할 점은 1597년의 정유재란입니다. 이때 선생은 이미 칠순(70대)의 고령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쉬고 있을 나이에 선생은 다시 의병을 일으켰어요.
적벽전 투에서 직접 적을 격파했으며, 그 정성과 용맹함으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습니다.
안타깝게도 선생은 나이 많은 노장의 부담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군영에서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어요. 하지만 그 일생은 단순한 노병의 죽음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몸을 바친 의병장의 최후였습니다.
서원의 창설과 기념관의 복원
선생이 돌아간 후, 이 지방의 유림들이 1607년 선조 40년에 서원을 창설하기로 결의했습니다. 평소 죽천의 학덕과 충의를 깊이 흠모했던 지방 사림들이 함께 움직인 것이죠. 특히 우산 안방준이라는 선생의 높은 제자가 건원통문을 작성하여 열읍과 유림에게 전하고, 도내 사림들의 협조를 얻어 실제로 서원 건립을 주도했습니다.
용산서원 바로 옆에는 보성 의병기념관이 있습니다. 이 기념관의 2층에는 죽천 박광전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어요. 서원과 기념관을 함께 방문하면 선생의 일생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임진왜란 시대의 역사와 그 속에서 피어난 의로운 정신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습니다.
나라 위기의 순간마다 일어선 의병장의 정신을 마주해보세요. 역사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남다를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