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송재 서재필선생 생가와 기념공원,
독립의 길을 열다
갑신정변의 주역이자 최초 양의사, 평생 독립운동에 바친 일생의 기록

보성군 문덕면 송재 서재필 선생 생가와 기념공원은 한국 근현대 역사의 거인 한 분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선생께서 태어난 이곳에서 출발해 세계 무대에서 펼친 독립의 삶, 그 전부를 조각공원과 유물전시관, 그리고 복원된 생가 건물들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어요. 방문하는 사람들이 선생의 얼을 기리고 호국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만 20세에 역사를 돌리려 했던 청년
서재필 선생은 만 20세라는 젊은 나이에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등과 함께 갑신정변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근대화시키려던 그 결연한 마음이 얼마나 뜨거웠을까요. 비록 갑신정변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것이 서재필 선생의 독립운동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정변 실패 후 선생은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가 되는 성취를 이루었어요. 그러나 선생은 미국의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제작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하며,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셨거든요. 광복 후에는 미군정청의 고문으로 일하다가 미국에서 영면하셨습니다.
선생의 삶을 담은 기념 공간들
선생의 유훈을 기리기 위해 1992년부터 기념공원 조성 사업이 시작되었어요. 사당 건립, 송재로 개설, 독립문 건립이 진행되었고, 조각공원과 유물전시관, 그리고 생가 복원이 차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유물전시관에는 서재필 선생 생전의 유품 8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어요.
서울에 있는 독립문과 동일하게 재현한 독립문도 이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기념공원에서 약 1. 4킬로미터 떨어진 가내마을에 선생의 생가가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60여 호의 마을이 소각되면서 소실되었던 것을 2003년에 중요 건물들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어요.
또한 이 지역은 천년고찰 대원사, 향토작가 전시관인 백민 미술관, 승주 고인돌공원 등과 연계되어 교육문화코스로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나라를 사랑했던 한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이 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