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철되고도 다시 일어난 보은 금화서원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해마다 제향을 올리는 삼승면의 서원이에요
충청북도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 금적산 북쪽 기슭에 금화서원이 자리하고 있어요.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가 한 차례 헐리고, 다시 일어선 서원이라 이름 뒤에 생각보다 깊은 사연이 담겨 있어요. 지금도 해마다 제향을 모시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니,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볼게요.
최덕진이 발의해 세운 서원
금화서원이 세워지기 시작한 건 1814년, 순조 14년의 일이에요. 최덕진이 선조인 삼지 최운과 계당 최흥림의 사묘를 세우자고 처음 발의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어요. 두 분 모두 최덕진 집안의 선조였던 만큼, 후손이 직접 나서서 사당 건립을 추진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와요.
조상을 기리는 사당을 세우는 일이 한 집안의 숙원에서 시작해 지역 전체의 공론으로 번져 나간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혼자 힘으로 밀고 간 일은 아니었어요. 지역 유림인 강재문을 비롯해 105명이 이 뜻에 찬동하면서, 한 집안의 발의가 지역 유림 전체의 공감을 얻는 일로 커졌어요. 이렇게 모인 뜻을 다시 감사에게 건의해 정식으로 승인을 받았다고 하니, 민간의 발의가 관의 승인까지 거쳐 완성된 셈이에요.
한 사람의 제안이 백여 명의 동의로 이어지고 관의 허가까지 받아내는 과정을 거쳤다는 건, 그만큼 이 일이 지역 사회에서 가볍지 않게 받아들여졌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어요.
이렇게 승인을 받은 뒤 1815년에 마침내 서원이 창건됐고, 5현의 위패를 봉안했어요. 서원은 본래 선현에 대한 제사와 지역 인재 교육을 함께 맡던 공간인데, 금화서원도 창건 이후 제향과 후진 양성을 함께 이어갔다고 해요. 제사를 올리는 공간과 배움을 나누는 공간이 한자리에서 함께 운영됐다는 점에서, 서원이 단순한 사당을 넘어 지역 교육의 거점 역할까지 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발의부터 창건까지 걸린 시간이 1년 남짓이라는 점도, 당시 지역 유림들의 결집력이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헐렸다가 다시 세워진 사연
순탄하게 이어지던 금화서원의 역사에 큰 변화가 닥친 건 1871년, 고종 8년이었어요.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정리하면서 내린 서원 철폐령에 따라 금화서원도 훼철되고 말았어요. 당시 전국의 수많은 서원이 같은 운명을 겪었는데, 금화서원 역시 그 큰 흐름을 피해가지 못한 셈이에요.
1815년에 창건된 뒤 반세기가 넘도록 이어오던 제향과 교육이 한순간에 끊어진 것이니, 지역 유림들에게는 꽤 큰 충격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대로 사라지지는 않았어요. 1917년, 지방 유림들이 다시 나서서 서원을 복건했고, 5현의 위패도 다시 봉안했어요. 1871년 훼철 이후 4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였으니, 그 사이에도 서원을 다시 세우려는 지역의 뜻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한 번 헐린 자리에 다시 서원을 세운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그만큼 지역에서 이 서원이 갖는 의미가 컸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복건 이후 지금까지 금화서원은 매년 음력 9월 초 정일에 제향을 봉행하고 있어요. 제사에 올리는 제품은 2변 2두로, 변은 과실이나 건어물 등을 담는 제기를, 두는 국물이 있는 음식을 담는 제기를 가리켜요. 정해진 날, 정해진 격식에 맞춰 제향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이 끊기지 않고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훼철과 복건이라는 굵은 사건을 겪고도 제향의 격식만큼은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헐린 자리에 다시 향이 오르기까지,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걸렸어요.
사우와 강당, 관리사로 이뤄진 공간
금화서원의 건물 구성을 보면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눌 수 있어요.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우, 강학이 이뤄지던 강당, 그리고 서원을 관리하던 관리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요. 각 건물이 제사, 교육, 관리라는 서로 다른 기능을 나눠 맡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세 영역이 한 공간 안에 어우러져 있는 구조라, 둘러볼 때 건물마다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하나씩 짚어보면 더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어요.
사우는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이에요. 팔작지붕은 지붕 네 면이 모두 경사를 이루면서 양쪽 끝에 삼각형 모양의 합각벽이 생기는 형태인데, 전통 건축에서 격식을 갖춘 건물에 많이 쓰이던 지붕 형식이에요. 사우에 이런 지붕을 올렸다는 건 위패를 모시는 공간을 그만큼 격식 있게 지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어요.
지붕 선이 만드는 곡선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전통 건축이 가진 비례감을 자연스럽게 느껴볼 수 있어요.
강당과 나란히 자리한 관리사는 5칸 규모예요. 서원을 돌보고 제향을 준비하는 살림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는 뜻인데, 이렇게 제사 공간과 교육 공간, 생활 공간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구성은 조선시대 서원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치예요. 건물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사우, 강당, 관리사가 각각 어떤 자리에 놓여 있는지 가늠해보는 것도 서원을 둘러보는 재미있는 방법이에요.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라, 세 공간을 모두 돌아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아요.
찾아가는 길과 함께 둘러보기
금화서원은 충청북도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 571-1에 자리하고 있어요. 금적산 북쪽 기슭에 들어서 있는 만큼, 찾아갈 때는 산 아래쪽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두면 좋아요. 정확한 진입로나 주변 도로 상황은 방문 전에 지도 앱으로 한 번 더 확인해보는 걸 추천해요.
주차는 가능하다고 안내돼 있으니, 차로 이동하는 경우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보은군은 산과 들이 넓게 펼쳐진 고장이라, 서원 한 곳만 보고 돌아오기보다는 주변 마을 풍경까지 함께 둘러보면 더 알차게 다녀올 수 있어요. 삼승면은 조용한 농촌 마을이 이어지는 지역인 만큼, 천천히 차를 몰거나 걸으면서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을 함께 느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봄가을처럼 날씨가 선선한 시기에는 산기슭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나들이가 될 수 있어요.
걷는 길에 마주치는 논밭 풍경도 보은이라는 지역을 이해하는 데 소소한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서원은 제향을 올리는 공간이기도 한 만큼, 방문할 때는 건물과 위패를 모신 공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둘러보는 게 좋아요. 평소에는 상시 개방돼 있어 특별한 예약 없이도 둘러볼 수 있지만, 제향이 있는 음력 9월 초 정일 무렵에는 행사 준비로 분위기가 다를 수 있으니 이 점도 참고해두면 좋겠어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미리 문의처로 연락해 확인해보고 다녀오는 것도 방법이에요.
서원 마당에 서서 사우와 강당을 눈에 담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깊은 시간이 될 수 있어요.
헐렸던 자리에 다시 제향이 오르는 모습, 그 결기를 직접 느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