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서당 터에 세운 포교당,
영주포교당의 변화
조선시대 향촌 교화 기구에서 포교당으로

영주 중앙로 일대에 자리한 영주포교당은 홍법사(弘法寺)라고도 불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에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영주 지역 포교당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 자리는 깊은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향서당의 자리
영주포교당이 현재 자리하고 있는 곳은 조선시대 향서당(鄕書堂)이 있던 자리예요. 향서당은 1371년 공민왕 20년에 영천군수로 부임한 하륜이 처음 세웠다고 합니다. 이것은 조선 건국보다 약 20년 전의 일이에요.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로 넘어가던 그 시대에, 향촌의 교화와 자치를 위해 설립되었던 기구였습니다.
포교당의 건립
1900년경이 되면, 영주포교당은 당시 대본사였던 문경 김용사 직할 포교당으로 건립되었어요. 흥미로운 것은 향서당의 건물을 뜯어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향서당이라는 조선 시대 향촌 기구의 건물이, 근대에 이르러 불교 포교당으로 그 용도를 바꾸게 된 셈이네요.
위치의 변화
처음 영주포교당은 하망동에 있었어요. 하지만 1940년 이후 현재의 위치인 영주동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런 이전은 도시의 변화와 도시계획에 따른 것이었을 거예요.
현재 영주동의 위치에서도 이미 80년 이상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근현대를 거치며
현재의 위치로 옮긴 이후 영주포교당의 역사는 이렇게 전개됩니다. 1911년에는 대웅전을 중건했고, 1970년대에 중창을 거쳐 요사를 건립했어요. 그 후 대웅전의 삼존불상을 개금(금칠을 다시함)하고, 주련(기둥에 붙이는 글씨)과 대웅전 현판도 새로 했습니다.
더 최근에는 2008년에 대웅전 법당 안 우측에 지장보살상을 봉안했고, 2009년에는 대웅전을 단청(색칠)하고 기단도 새롭게 단장했어요. 이렇게 지속적인 관리와 정비를 통해 현대에도 신앙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700년을 넘는 자리
영주포교당의 자리는 700년을 훨씬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어요. 향서당으로 출발해, 포교당으로 변화하면서도 그 공간은 지역 주민들의 정신적 안식처로 계속 기능해왔습니다. 시대와 종교의 틀은 바뀌었지만, 그 자리가 담아온 신앙과 공동체의 무게는 여전히 깊습니다.
700년을 넘는 역사의 자리. 향서당에서 포교당으로 변화했지만, 그 자리가 담아온 영주 사람들의 정신은 계속 흐르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