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장천리 선사주거지,
청동기시대 움집의 흔적
4∼5m 크기의 원형 움집, 서호면의 선사시대 이야기

영암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이 유적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정말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예요. 약 4∼5미터 크기의 원형 움집에서 4∼5명의 가족이 함께 살았다고 해요. 땅을 깊이 30∼50미터 정도 파고 내부 바닥을 진흙으로 다진 후, 벽을 따라 기둥을 세우고 풀이나 갈대로 지붕을 만들었다니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1984년 목포대학 박물관의 발굴조사로 드러난 이 유적은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권의 흔적이에요.
청동기시대, 가족 4∼5명의 집 이야기
선사주거지의 움집은 원형 내지 타원형의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집의 면적이 약 12∼20제곱미터 정도로, 현대의 작은 아파트 원룸 정도의 크기라고 생각하면 돼요. 중앙에 얕은 구덩이가 있고 바닥면 가장자리에 기둥구멍이 남아 있는데, 흥미롭게도 화로터나 출입구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요.
현재 유적지에는 원형 움집 1채와 사각형 움집 1채가 복원되어 있어요. 원형은 이곳에서 실제로 발견된 형태의 것이고, 사각형은 중부나 북부지방의 움집을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답니다. 이렇게 두 가지 형태를 함께 볼 수 있어서 청동기시대 지역별 주거 문화의 차이를 직접 느껴볼 수 있어요.
전시관에서 만나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
유적지 옆에는 발굴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어요. 항아리형·사발형의 무늬없는토기, 화살촉·가락바퀴·삼각형 돌칼 등 석기류가 전시되고 있거든요. 고인돌이나 토기 만드는 방법도 그림으로 소개되어 있어서, 전시관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선사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해볼 수 있어요.
이 선사주거지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옛날 집터라는 것 때문만이 아니에요.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권의 증거이기 때문이에요. 같은 시대에도 지역마다 다르게 발전한 선사문화를 이해하는 데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죠.
4,000년 전의 집터에 서 있으면, 시간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져요. 영암의 오래된 역사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