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승려의 다른 길,
흥왕사
고달과 소달, 두 가지 신념의 사찰

신륵사 하구로 흘러내리는 금당천과 중암리를 가로질러 흐르는 완장천 사이에 자리한 흥왕사는 고려시대 사찰입니다. 나지막한 야산에 그 터를 잡고 있는 이곳의 역사는 흥미로운 전설과 함께 시작되어요. 고려 초 소달이 창건했다고도 하고, 고려 말 혜근(1351∼1374)이 세웠다고도 하는데 정확한 것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고달과 소달의 전설
흥왕사의 이야기는 또 다른 여주의 명찰 고달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달과 소달은 형제지간으로, 각기 뜻을 품고 부처님 전에 그 몸을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각기 뜻을 품은 바가 달랐습니다.
그들의 서로 다른 신념이 두 개의 다른 절을 만들어냈거든요.
고달은 국가에 도움을 주는 절을 세웠고, 소달은 사찰을 진리의 도량으로 생각하며 오래도록 중생을 교화하는 절을 지향했습니다. 그 결과 고달이 세운 고달사는 고려의 명문사찰로 명성을 떨쳤지만 일찍 폐사되었고, 소달이 세운 흥왕사(상왕사)는 조용히 은둔하며 그 법을 이어나가 아직도 법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진리의 도량으로서의 존재
흥왕사는 자그마한 암자의 모습으로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는 진리의 도량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왔어요. 화려한 외양보다는 정신을 중시하는 소달의 뜻이 오늘날까지 이 절에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형제 승려의 다른 선택과 다른 길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다르게 평가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흥왕사를 방문하는 경험이 더욱 의미 있어집니다.
고달이 세운 사찰은 국가의 번영에 힘썼고, 소달이 세운 사찰은 중생의 영혼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두 가지 길의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없지만, 소달의 길이 오래 유지되어 지금까지 법등이 이어져 온다는 것은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입니다. 흥왕사에서 만나는 것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신념에 따라 살아간 한 승려의 정신입니다.
명문사찰은 사라졌지만 작은 암자는 아직도 법등을 지키고 있습니다. 흥왕사에서 만나는 것은 신념의 가치와 오래 지속하는 것의 의미입니다.








